강릉으로 가족여행을 떠났을 때였어. 오랜만에 멀리 떠난 여행이라 기분에 취했는지 멋진 풍경과 함께 찍은 아내와 아이 사진 몇 장을 친지와 친구들 단톡 방에 올리고 싶었어. 아내에게 몇 장 올려도 되느냐고 묻자, 아내는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사진은 빼고 올리라고 했지.
사실 난 아내와 아이가 함께 있는 사진을 올리고 싶었어. 대부분 멀리서 찍은 사진들이라 아내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나왔고, 어떤 표정인지 일일이 확인하기가 어려워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아무 생각 없이 보낸 거야.
아내는 내가 보낸 사진을 일일이 확대해보더니 금세 표정이 굳어졌어. 왜 자기 말을 듣지도 않고 사진을 보냈냐며 따지듯 물었지. 난 할 말이 없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보낸 것도 아니고, 이런 걸 가지고 왜 토라지나 싶었어. 나 역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지.
어린 딸을 사이에 두고 한 동안 냉랭한 기분이 오갔고, 이 멋진 곳까지 와서 뭐 하는 건가 싶었지. 결국 내 잘못이 크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고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용서했어. 다시는 주의하겠다는 굳은 약속도 하고 말이야.
봄날 날씨 풀리듯 우리 사이에는 다시 온기가 흘렀고 그렇게 길을 내려오다 문득 한 문장이 떠올랐어.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꿀맛 같던 연애의 쓴맛을 보거나 결혼식 전전날 사이가 틀어져 뼈아픈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떠올렸던 문장일 거야. 하지만 한창 달콤한 연애에 빠져있거나 결혼의 환상 속을 헤매고 있는 사람에게는 별로 와 닿지 않았을 거야. 무조건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상대가 좋아하고 기뻐할 만한 행동을 골라하기 때문이지.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 건 남녀 사이, 부부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건 아니야. 우리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직장 내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마인드지.
대체로 직급이 높거나 권위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행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어.
얼마 전 모 회사 대표의 엽기적인 행동이 큰 이슈가 되었지. 그는 회사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동물학대를 하고 직원들에게 학대를 강요하는 모습이 공개되었는데, 인간의 뇌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러고 싶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어. 그는 상대방이 싫어할 만한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이나 힘을 인정받고 자랑하고 싶은 심리를 표출한 거라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야.
자신이 회사 대표가 아니더라도 팀 내 부하직원이 있다면 그 후배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아야 할 필요도 있어.
야마다 레이지가 쓴 <어른의 의무>란 책을 보면 어른은 되지 못해도 ‘꼰대’는 되지 말아야 한다며, 존경받을 수 있는 ‘어른의 의무’ 3가지를 제시했어.
그것은 후배에게 조언이랍시고 개인적인 고민과 불평하지 않기.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부족해 보이는 후배에게 잘난 척하지 않기. 내 기분이 좋지 않더라도 후배에게 기분 좋은 상태 유지하기라고 쓰여있지. 아무리 나이 어리고 모르는 것이 많은 후배라 할지라도 사람 대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줘야 한단 말이지.
이렇게 사랑하는 연인뿐만 아니라 부부 사이 그리고 사회에서도,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배려가 필요해. 물론 처음에는 낯설고 생소한 분위기 때문에 자신의 습관이나 본성을 숨긴 채 상대방의 기분에 거슬릴 것 같은 말이나 행동을 자제하게 되지.
그러다 다 잡은 물고기라고 생각하거나 내 부하라고 생각하는 순간, 슬슬 숨겨왔던 습관이나 생각들이 상대방 앞으로 기어 나오기 시작하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말이야.
물론 상대방이 같이 호응해주고 맞장구를 쳐주면 금상첨화, 천생연분이겠지만 사실 그런 경우는 흔치 않아. 오히려 극혐 하지 않으면 다행인 거지. 상대는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부분을 지적하며 개선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하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개선을 요구하면 무조건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 만약 이런 요구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으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당장 헤어져야 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 그런데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능사 일까? 무조건 자신이 해오던 습관이나 본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고쳐야만 해야 하는 걸까? 그런 요구를 받았을 때 과연 쉽게 고쳐질 수 있는 것일까?
사안에 따라 내용에 따라 쉽게 고쳐질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건 거의 없어. 더구나 살아온 세월의 퇴적이 겹겹이 쌓여 있다면 이미 화석이 되어 불가능 하지.
만약 어떤 남자가 담배를 너무 좋아하는데 사랑하는 여자가 계속 피우면 헤어지겠다고 말한다면 그 남자는 무조건 끊어야만 할까? 건강에 안 좋은 건 알지만 자신의 습관이나 다른 이유로 피워야만 한다면 남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 때문에 헤어진다는 건 오히려 천부당만부당한 일 아닐까?
여기서 중요한 건 바로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아닐까 싶어.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한다면,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자제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상대는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면서 줄일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그런 배려와 이해 말이야.
우리는 보통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거나, 자신이 싫더라도 관계 유지를 위해 지켜봐야 하는, 이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즉 자신의 의견이나 요구가 관철되도록 일방적으로 지시하거나, 또는 무조건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러다 보면 어느 한쪽은 분명 지치게 되어 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도 힘들게 돼. 결론은 얼마나 상대를 위하고 배려하느냐가 관건인 거지.
길을 내려오다 떠올랐던 그 문장이 다시 생각났어.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했지.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다’는 말은 어딘가 부족하고 일방적인 말이야. 그 말에 ‘그리고 사랑한다면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무조건 싫어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을 덧붙여야 된다고 생각해.
그것이 진정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조금 더 나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말이 되지 않을까? 누가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