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내 꿈이니까

마흔이 돼서야 깨달은 삶의 이치를 고전의 대화를 통해 말하다.

by 이로
“이제 그만 일어나! 앨리스. 무슨 잠을 이리도 오래 자는 거니?”
“아! 정말 이상한 꿈이야”
“이제 차를 마시러 가야 할 시간이야. 시간이 늦었어. 뛰어”
“정말 이상한 꿈이었어”






중국 전국시대에 ‘장자’라는 철학자에 대한 책 <장자>의 <제물론>에는 호접지몽(胡蝶之夢)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있어. 아는 분도 있겠지만, 잠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아.


‘장주(莊周, 장자)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펄펄 나는 것이 확실히 나비였다. 스스로 유쾌하여 자기가 장주인 것을 몰랐다. 그러나 얼마 후 문득 꿈에서 깨어 보니 자기는 틀림없이 장주였다. 장주가 나비 된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꾼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장주와 나비는 분명히 구분이 있을 것이니, 이를 일러 만물의 변화라고 하는 것이다.’



잠을 자던 장자는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어. 훨훨 하늘을 나는 꿈속에서 자신은 분명 나비라 생각했지. 하지만 꿈에서 깨어 보니 자신은 장자였어.


자신이 장자로서 나비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나비인데 장자라고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물아일체(物我一體 ) 또는 인생무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




난 비록 나비가 되는 꿈을 꿔본 적은 없지만, 온몸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꿔본 적은 있었어. 남자라면 대부분 꾼다는 군 입대하는 꿈 그리고 고3 때 망친 모의고사에 대한 꿈이 바로 그것이었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계속 울먹거렸던 기억과 학력고사 보기 한 달 전, 망쳤던 모의고사에 대한 기억이 악몽처럼 되살아났던 거야. 마치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내가 된 것처럼 너무나도 생생해 잠에서 깬 후에야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지.


정말 괜찮다고, 다 잊었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스갯소리로 말하고 다녔지만, 내 무의식은 아직 정리하지 못한 채 꿈으로 불러냈던 거야. 내 머릿속에 지우개라도 집어넣고 싶은 마음이었어. 꿈은 그렇게 쉽게 지울 수 없었던 내 기억을 소환해 내고 있었어.


비록 꿈은 지워버리고 싶은,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까지 되살려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평소 간절히 바랐던 일이나 이루지 못한 목표 등을 일깨워 주는 아주 고마운 역할을 하기도 해.


그러다 그 꿈을 이루는 꿈이라도 꾸기는 날엔, 길몽이라 생각해 당장 로또라도 사야 될 것만 같은 기분에 취하게 되지.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어. 오히려 악몽을 꾸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였으니까.




꿈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 잠잘 때 우리의 의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꿈. 그리고 깨어있을 때 본인의 바람과 의지를 담은 꿈. 바로 그것이지.


잠잘 때 꾸는 꿈은 평소 고민이나 걱정 또는 억눌린 소망 같은 것을 반영하지만, 깨어있을 때 꾸는 꿈은 의식적으로 본인이 원하는 목표를 반영한 꿈이야. 흔히 말하는 ‘네 꿈을 펼쳐라’라는 말속에는 현실을 상대로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반영하고 있지.


그런데 이런 꿈은 유독 앞날이 창창한 젊은 청년들에게만 당연히 가져야 할 덕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만약 그런 꿈이 없다고 말하면 도전정신이 부족하거나, 열정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해 버리곤 하지.


어릴 적 “꿈이 뭐니?” “무엇이 되고 싶니?”라는 답이 뻔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처음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왜냐고? 그런 꿈조차 꿔 본 적 없었으니까. 내 주제를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그럴싸한 꿈으로 둘러대야 했어. 과학자나 판, 검사 또는 임원 정도는 나와 줘야 사람들은 꿈이 크다고 칭찬을 해주었지.


그 후 어른이 되고 회사를 다니며 좋아하는 취미를 발견하게 되었고, 진정 내가 원하는 현실 속의 꿈을 꾸게 되었어. 경제적으로 물질적으로 득이 되는 꿈은 아니지만 내가 즐거워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일이라 생각했지. 설사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전혀 후회되지 않을 그런 꿈 말이야.


하지만 세상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꿈을 강요하고 있었어. 거기에 돈까지 벌어야 꿈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지. 물론 틀린 말은 아니야.


어릴 적부터 꿈은 되고 싶은, 이루고 싶은 어떤 구체적인 형태로만 존재해 왔었고, 사회적으로 성공해 많은 부를 누려야만 성공한 꿈이라고 평가받아왔어.


꿈은 다른 말로 ‘목표’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돼, 꿈이 없다는 건 망망대해에 노를 젓지 않고 흘러가는 데로 살겠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


그런데 정말 우리는 꿈을 꾸기 싫어서 안 꾸는 것일까? 아니면 한 번도 꿔 본 적 없기에 못 꾸는 것일까? 말도 안 되는 말이라 생각하겠지만 실상 우리의 현실을 돌이켜 보면 내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게 될지도 몰라.




학생 때부터 우린 학교와 학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돌아다니며 오직 성적 올리기에만 열을 올릴 뿐이었지. 그런 와중에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 “내 꿈은 무엇일까?”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할 시간이 있었을까?


시간이 비교적 많을 것 같은 사회생활에서도 “내가 진정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라도 할 만한 여유조차 가지고 있었을까? 아마 그런 생각할 시간에 한 가지 일이라도 끝마쳐 야근하지 않고 빨리 퇴근하는 게 더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대부분일 거야.


또한 N포 세대, 흙수저, 유리천장, 헬조선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 속에서 아무리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한들 우리가 가진 꿈을 그대로 이룰 수 있을까? 이미 계층 간의 이동 사다리가 끊어진 상황 속에서 우리가 가진 꿈은 말 그대로 허황된, 쓸모없는 꿈이 돼버린 지 오래되었어.


꿈은 누구나 가져야 한다고 그리고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현실은 그 꿈조차 포기하라고 암묵적으로 지시하고 있었어. 또한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그들을 향해 우린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주기는커녕, 매몰차게 몰아붙였지. 나약하고 의지가 없다는 말까지 하면서 말이야.




어쩌면 자는 동안만이라도 마음대로 꿈꿀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운 일 아닌가 싶어. 비록 일장춘몽처럼 한 낱 꿈에 불과하더라도 말이야. 잠잘 때 꾸었던 꿈은 내 내면에 숨어있는 욕망과 의지를 저버리지 않고 그대로 상기시켜 주었으니까.


아무리 현실이 꿈조차 용납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내 꿈이니까. 내 본능이 꾸는 거니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결코 잊지 말라고,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알려주는 고마운 꿈이니까.


비록 나비가 되는 꿈을 꿀 수 없다 하더라도, 잘 때 꾸었던 그 꿈 그대로, 현실에서도 똑같은 꿈을 꿀 수 있는 세상.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지는 그런 세상을 꿈꿔봤으면 해. 자신과 우리 모두의 꿈을 위해서라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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