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오늘 아침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어제로 돌아가서 이야기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지금 저는 어제의 제가 아니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하루가 매일 반복된다면?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만 봐야 한다면? 그 사람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반복되는 그 하루에서 벗어나고자 무슨 일이든 하지 않을까? 영화 <하루> (2017년작)에서 나온 이야기야.
딸의 생일 약속 장소로 가던 중 대형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죽어있는 딸을 발견한 ‘준영’. 사고 후 다시 눈을 떴을 때 딸의 사고 2시간 전으로 돌아가게 되자, 사고를 막으려고 하지.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어.
사고로 아내를 잃은 남자 ‘민철’ 또한 ‘준영’처럼 반복되는 아내의 죽음을 바라만 봐야 했지.
그렇게 아무 이유 없이 반복된 그들에게 하루는 곧 지옥이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서라도 벗어나고 싶은 하루였을 거야.
영화 속 주인공과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우리 또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고 있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출근하고 일하며, 퇴근하는 그런 하루. 그래서 일상 하면 ‘지겹다’ ‘따분하다’ ‘지루하다’는 말이 먼저 떠오르게 마련이지.
그런 생활이 지속될수록 마음속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기 마련이야.
그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포자기하듯 ‘이렇게 사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뭐’ 라며 다시 제자리를 찾기 마련이지. 하지만 일부 용기(?) 있는 사람들은 그런 삶에서 벗어나고자 탈옥을 감행하기도 해. 쇼생크 탈출만큼이나 치밀하게 계획하기도 하지만, 어떨 땐 무모하리만큼 대책 없이 뛰쳐나가기도 하지.
지겹도록 반복되던 일상에서 벗어나 새롭게 펼쳐진 하루는 매일매일이 새롭고 흥미롭게 보이기 시작하지. 정해진 시간과 틀에 맞춰 뭔가 억지로 할 필요 없는,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는 세상처럼 보이기 시작한 거지.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도 잠시, 머지않아 또 다른 일상의 굴레 속에 갇히게 돼. 평소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이나 취미에 빠질수록 그것 또한 일상이 돼버리고 마는 것처럼 말이야.
물론 그동안 억지로 무엇을 해야만 했던 일상이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과연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사는 사람. 몇이나 있을까?
내키지 않지만, 정말 하기 싫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다시 반복되는 일상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게 우리의 삶이라면, 지구가 자전하듯 제자리에 서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운명을 우린 짊어지고 태어난 거지.
그런 삶 속에서 우린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고,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산다고 생각하지. 자신 또한 어제의 나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삶이 힘들고 버거울 때마다 우린 일상이 소중하고 그 안에 행복이 숨어있다는 말을 들을 듣곤 하지. 그럴 때마다 일상을 살아갈 힘을 다시 얻기도 해.
하지만 나에게 그 약발은 오래가지 못했어.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간 속에 스스로를 돌아볼 겨를조차 없이, 지나가버린 버스 뒤로 손을 흔들어야 했지.
다시 일상의 지루한 힘이 나를 누르기 시작했어. ‘하루하루 바쁘게 살기도 버거운데 언제 소중한 순간을 찾고 행복을 느낀다는 말인가?’ 회의감이 몰려왔지.
무심코 밟은 늪지대에 빠져 내 모습이 사라지는 기분이었어. 도대체 무엇이 어제의 ‘나’이고 무엇이 오늘의 ‘나’인지 구분하기 조차 힘들었지. 그렇게 알 수 없는 내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어.
지루하고 답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나 같은 미천한 중생을 위해 법정스님께서는 그의 저서 <서 있는 사람>을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셨어.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또한,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니, 스님! 좋은 말씀이긴 한데 저 같은 중생은 언감생심 이해하지 못하겠나이다. 아니, 어제의 내가 있으니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인데,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니라면 도대체 지금의 나는 어디서부터 왔다는 말씀이십니까? 전혀 앞뒤가 맞지 안 싸옵니다.
그런데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스님의 말씀 또한 끝까지 들어야만 알 수 있었어.
‘사람이란 다행히도 그 자리에 가만히 놓여있는
가구가 아니며, 앉은자리에서만
맴돌도록 만들어진 시곗바늘도 아니다.
끝없이 변화하면서 생성되는 것이
생명현상 이므로 개인의 의지를 담은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인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래! 우린 가구도 아니었고 시계도 아니었어. 우리가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뿐, 내 안의 나는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어. 어제와 다른 또 다른 변화 말이야. 그런 내가 있기에 지금의 나는 어제와 다른 내가 있는 것이지.
어제와 다른 내가 있음을 인정한다면, 분명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전혀 다른 존재야. 모습은 같지만 서로 다른 객체 인 거지. 시간을 조금 더 잘게 쪼갠다면 매 순간순간 다른 존재의 ‘내가’ 존재할 것이고.
찰나와 찰나 사이. 그 사이에 존재하는 나 역시 찰나의 ‘나’ 일거야. 그리고 그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리지. 그런 찰나의 ‘나’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리고 연속적으로 이어진 찰나의 순간 속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그건 우리가 그토록 들어왔던, 마음을 다해 이 순간에 집중하며 즐기는 것 아닐까? 어차피 지금 이 순간도 ‘훅~’하며 지나가버릴 테니 곧 지나가버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사는 것. 그것이 어제와 다른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길임을 깨닫게 되었어.
우리가 일상을 지루하게 생각하는 건 그 순간이 자신에게 의미 있는 순간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 아닐까? 매 순간을 충실하게 보내며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내기엔 바쁜 현실 속에선 무리 일터.
매일매일이 같아 보여도 서로 다른 날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매번 소중한 순간이라고 느끼는 건 사실 어려운 일.
그 보다는 하루에 단 한순간만이라도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으려고 한다면, 그래서 한 순간만이라도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오늘 하루, 지루하게 하루를 보낸 내가 아닌 어제와 다른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