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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Jul 08. 2024

단원들이 따르는 지휘자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많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단연 지휘자다. 비록 자신이 리드하는 연주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하는 연주이지만. 지휘자는 수십 종의 악기 주자를 이끌면서 화음을 이끌어내야 하기에 각 악기의 특성에 정통해야 한다. 그러기에 강약과 템포를 통해서나마 그 많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종합예술을 이끄는 영화감독이 배우의 연기는 물론 조명과 미술 등 수많은 스텝을 지휘하는 것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대개 음악감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휘자는 보통 음악대학에서 지휘과를 전공하고 전문 지휘자 트랙으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기악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으로 인정받은 후 지휘에 입문하는 경우도 많다. 대단한 마에스트로는 대개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전공하고 일정한 경지에 올라 더 풍부한 음악세계를 위해 포디엄 위해 올라서기도 한다.


클래식음악사에 이름이 남은 작곡가들은 당시 직접 무대에 올라 지휘하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그때는 자신의 작품을 관객에게 초연으로 보여주어서 신고식을 치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베토벤의 <전원>이나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 비제의 <카르멘>은 장르는 달라도 모두가 작곡자가 직접 지휘를 해 자신의 작곡 의도에 맞게 음색을 표현하고자 했다. 초연은 이 세 작품처럼 처참하게 실패한 경우도 많았다.  지금 클래식사의 명작으로 남은 작품들 중에서 초연에 '부라보'와 환호성이 터진 경우보다 작곡자를 시름에 빠지게 한 경우가 많았다. 


지휘자들도 데뷔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하기보다 냉담한 반응 속에 포디엄을 내려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지만 얼떨결에 올라선 무대에서 대타 홈런을 치기도 했다. 이젠 전설의 마에스트로가 된 토스카니니는 첼리스트로 연주투어에서 상임 지휘자가 펑크를 내는 바람에 대신 무대에 올라서 훌륭하게 데뷔한 경우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토스카니니는 평소 암보 능력이 뛰어나 첼로연주를 거의 악보 없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휘자의 깨알 같은 총보를 소화하는 데에도 문제가 없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토스카니니처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들 중에는 연주자로도 일가를 이루고 스타성을 발산했던 경우가 많다. 

주빈 메타는 바이올린, 다니엘 바렌보임은 피아노로 세계무대를 휘저었고, 한국의 정명훈과 김선욱 또한 피아니스트로 대단한 이력을 쌓았다. KBS 교향악단을 지휘했던 피에타리 잉키넨 또한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한 바 있다.


가지런히 빗은 머리모양처럼 정갈하고 티 없는 연주가 일품인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를  언뜻 닮아 보이는 조성진은 왠지 그냥 피아니스트로만 살 거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예술가 내면의 폭풍과 또 다른 음악적 갈구는 그를 어떤 세계로 이끌지 모른다. 더구나 아직은 남은 음악 인생이 긴 연주자의 미래를 예단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지휘의 세계에서 그냥 작은 막대를 흔들기만 하고 멋스러운 복장을 한 이로 살아남은 사람은 없다. 진정한 마에스트로는 지루할 수도 있는 리허설에서 강약과 템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악기의 특성에 맞게 연주를 지시하며 공감을 이끌어내야만 한다. 때로는 불가피한 갈등에 당당히 맞서기도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도 외면하고 연주자들도 포디엄에서 그를 곧 밀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리더는 정통해야 한다. 적어도 정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리더를 따르는 팔로우어를 바라는 건 자아도취다. 그건 조직도 오케스트라도 마찬가지다.


Tchaikovsky: Violin Concerto op.35 & Romeo and Juliet Fantasy Overture - Live Concert HD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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