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됨됨이나 그릇, 지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의 하나는 언어다. 한 사람이 구사하는 말에는 겸손 같은 인성을 가늠할 수 있는 실마리가 들어있고, 그 사람의 식견을 짐작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무리 매너가 좋아도 건조한 언어로 중언부언하는 경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렇게 언어는 인간의 지성이나 마음을 담는 그릇에서 나아가 창의성과도 연결된다.
과거 학창 시절에 영문법이나 국문법을 달달 외면서 어법이나 철자로 시험을 치면서 자라났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게 그렇게나 밤을 지재워 공부할 내용이었나 싶다. 관계대명사, 전치사가 어떤 의미인지 알기도 전에 기계적으로 외운 경우도 많다. 창의성을 위해 다른 학습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이제 AI가 거대언어모델(LLM)을 탑재하고 이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시대에도 이런 시험으로 학생들을 지치게 하는 것이 맞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문법을 떠나 실용의 언어는 그 사용 사례가 엄청나게 방대하다. 우리가 문자메시지로 대답을 할 때에도 같은 긍정이라도 "네 알겠습니다."로도 할 수 있지만, "넵", "넹~", "네^^" 같이 실로 다양하다.
이런 대답을 문자메시지로 받고 앞으로는 자신의 기준에 맞게 특정 단어를 쓰라고 야단을 치는 어른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귀엽고 발랄한 모습이 읽혀서 즐겁게 수용하게 된다. 수많은 '콩클리쉬'가 K팝에 녹아있고 이를 영어 원어민 국가들의 소년 소녀들이 따라 하면서 한국어의 영토는 넓어지고 있기도 하다.
단어의 문제만은 아니다. 예술과 음악은 우리의 감성 언어를 더욱 풍부하게 한다. 모나리자의 미소와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얘기하거나 다양한 사례를 들고 예술가들의 예술혼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의 여백을 풍부히 하면 그 사람의 언어는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자칭 클래식 전문가라고 떠들던 청년시절, 설레는 이성과의 만남이 기억난다. 카페에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도무지 모를 것 같아서 지식이 들통날까 봐 손에 땀을 쥔 기억이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에 음악을 들려주면 저절로 음악을 알아맞히는 앱이 있을 정도였지만 그때는 위기상황으로 느끼던 시절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넓고 큰 클래식 음악이라는 바다에 빠져 헤엄을 치면서 즐기면 되지 굳이 그 바닷물의 성분을 염분과 칼슘이 몇 % 인지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즐기시면 됩니다." 하고 너스레를 떨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여유와 품격도 지성과 인격의 깊이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것은 곧 그 사람의 언어의 풍부성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Clara-Jumi Kang: Bruch, Scottish Fantasy, Op.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