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무대에 설 수 있는 힘

예술과 대담성

by 호림

연주자들에게 무대공포증은 골프 선수들의 입스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 교만할 정도의 지나친 자신감도 문제겠지만 자신감 상실은 내부에서 스스로를 무너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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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륙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사후에 그의 아들이 쓴 책에 따르면, 콜럼버스는 백작의 후예로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는 콜럼버스의 아버지 도미니크 콜롬부는 어릴 때 작은 술집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 평범한 서민이었다. 출신을 속이는 건 나쁘지만 신분 때문에 기죽지 않으려는 콜럼버스의 배짱이 숨어있다.


야심을 가진 콜럼버스는 왕실과 연이 닿는 집안과 결혼하고 스페인으로 이민을 가 이사벨라 왕후를 만나 그의 황해 계획에 대한 후원 제안을 했다. 자신감 넘치는 제안에 왕후도 대항해에 필요한 재원과 물자를 허락한다. 한 번의 실패가 있어도 왕후는 또다시 지원해 결국 신대륙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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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가 만약 실패할지 모르는 대항해를 설명할 때 구걸하듯이 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프리젠테이션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도 자신감 넘치게 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던 것이다. 물론 신대륙에서 얻은 수익의 10%를 자신에게 떼어달라는 요구조건은 거절당했지만, 왕후는 이 젊은이의 대담함과 패기에 반했다.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이 "베트남 촌놈이 무슨 쇼팽 콩쿠르?" 하고 포기했다면 베트남의 자랑은 진작에 싹이 죽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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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테너 카루소도 무대공포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무대공포증이 있었던 쇼팽은 대중들 앞에서 독주 연주는 거의 하지 않았다. 반면의 그의 절친이기도 한 리스트는 대중공연을 즐겼다고 한다. 리스트가 멋지게 차려입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팔을 위아래로 흔드는 요란한 제스처로 연주하면 여성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오늘날 많이 사용되고 있는 '리사이틀' 이란 용어는 '리스트'를 그 어원으로 하는 독주 무대를 가리킬 정도로 독주 연주의 제왕이 리스트다.


쇼팽은 무대를 피하는 스타일인데 오늘날 리스트 콩쿠르는 들어보지 못해도 쇼팽 콩쿠르가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로 자리 잡은 건 아이러니일까. 아니면 쇼팽이 연주나 작곡이나 모든 면에서 리스트보다 한 수 위여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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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유수의 대학을 다오고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언어장벽에 주눅이 들어서 의욕을 상실할 위기가 있었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콩글리시이지만 최대한 큰 소리로 발표하고 어법이 다소 틀렸더라도 자신의 상황을 이해한 교수들의 격려로 이국에서의 학위과정이란 낯선 무대를 극복했다.


언어의 장벽을 느끼는 중국에서 온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유사한 맥락이 될 것이다. 무대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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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치는 외부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 스스로 결정한다. 당신의 행동이 당신 자신에 대한 관점을 반영한다. 만약에 고개를 숙이고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걸으면 당신을 신뢰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떤 악기라도 설사 연주자가 음정을 정확히 짚더라도 소리의 크리가 약하면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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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를 잘 치는 비결을 전하는 싱글 핸디캡의 선배가 한 말이 기억난다. 골프 클럽이 몇 개 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14개라고 했는데, 선배는 꼭 한 가지 클럽을 더 가지고 가라고 했다. 그것이 뭐냐고 물으니 그것은 골프백에 넣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담아 가는 것이라고 했다. 15번째 클럽의 이름은 '배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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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다섯 번째 클럽은 무대에 서는 예술가만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무대에 서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다닌다면

무대공포증은 썩 물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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