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독일의 철학자로, 그의 철학만큼이나 철저하고 엄격한 시간 관리로도 유명하다. 그의 일상은 시계처럼 정확했고, 심지어 그가 산 도시 쾨니히스베르크에서는 그의 산책 시간을 보고 시계를 맞추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행은 언감생심이고 칸트의 하루 시간관리 루틴은 거의 매일이 똑같았던 삶이라고 한다. 그의 일과표를 살펴보자.
매일 같은 시간에 기상 (오전 5시)
오전 시간은 집필 및 강의 준비
점심은 반드시 1시에 먹고, 손님들과 식사
오후에는 정기 산책 (무조건 같은 경로)
저녁에는 독서 또는 쉬는 시간
밤 10시에 수면
철학서 <실천이성 비판>을 비롯한 3대 비판서도 이 같은 규칙적인 루틴 속에서 탄생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칸트는 시간 낭비를 비도덕적인 행위로 여겼기에 의무감 있는 자기 관리가 인간 이성의 도덕적 이상과 일치한다고 봤다. 그는 집중을 위해 외부와 철저히 단절하고, 작업 시간에는 한 가지 일에 몰두했고, 그 어떤 손님 방문이나 사건도 자신의 루틴을 방해하지 못하게 했다.
거의 수도사에 비할 정도로 자기 통제 또한 철저해서 지나친 감정 표현, 즉흥적 행동, 늦잠, 과식 등을 철저히 금했다. 이는 ‘내가 나를 지배한다’는 자율성(autonomy)이 그 철학의 핵심이자 생활 원칙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인생이란 결국, 시간의 길이의 문제임을 생각하면 시간 낭비 최소화, 우선순위 설정은 우리 삶의 가치를 높이는 방식임은 분명하다. 현대에 응용해도 디지털 디톡스, 자기 규율, 나아가 외부 방해를 차단하고 딥 워크(Deep Work)를 실천한 칸트의 면모는 존경할만하다 하겠다.
“시간은 무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정해진다.”
- 칸트
칸트의 시간관리는 단순한 일정 관리가 아니라 삶의 철학이자 도덕적 실천이었기에 그에게 시간의 활용은 곧 인간의 존엄성과 직결되는 문제였고, 규칙적 삶은 자기 철학의 구현이었던 것이다.
현대에도 시간관리의 거인은 많지만 구소련의 지식인 류비세프가 대표적이다. 그는 자신의 일과를 분단위로 기록하며 방대한 저서와 논문을 남기기도 했다. 벤자민 프랭클린 또한 시간관리 다이어리가 유명할 정도로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매분 매초를 꽉 붙잡고 살았다.
칸트와는 결이 다르게 시간을 아끼고 활용하는 것에만 방점을 찍지 않고, 게으름을 찬양한 영국신사가 있었다. 서양철학과 수학에서 큰 업적을 남긴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1935년에 발표한 에세이〈게으름에 대한 찬양 (In Praise of Idleness)에서 '게으름(laziness)'이라는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러셀이 말한 게으름은 무책임한 무기력이나 나태함이 아니라, 노동 중심 사회에 대한 비판과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유의 여유를 강조한 철학적 주장이었다.
러셀은 당시 산업사회가 ‘노동’을 지나치게 미덕으로 숭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 중 상당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일하기 때문에 생긴다.”
- 러셀
그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일해야만 삶이 유지된다는 믿음이 불평등과 빈곤의 원인이 되며, 실제로는 기술 발전 덕분에 훨씬 더 적은 노동으로도 모두가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러셀은 기술과 기계화의 진보가 인간에게 여유를 줄 수 있는 기회라고 보았다. 그러나 사회가 그 여유를 부자들만을 위해 독점하게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긴 노동에 시달리도록 내버려 둔다고 비판했다.
“산업화의 진짜 목적은 인간의 노동을 줄이고, 모두에게 여가를 나누는 데 있다.”
- 러셀
그는 ‘게으름’이 단순한 시간 낭비가 아니라, 창의성, 사유, 예술, 과학 발전의 기반이 되는 여가라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나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사례에서 보듯 위대한 문명은 대부분 풍요로운 여가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건설적인 여가는 문명의 요람이다.”
- 러셀
러셀은 현실적인 제안으로 모든 사람이 하루 4시간, 일주일에 20시간 정도만 일하면 사회는 충분히 돌아가고, 모두가 남는 시간을 독서, 산책, 사유, 인간관계에 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버트란트 러셀이 말한 ‘게으름’은 오늘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기본소득 논의, 자동화로 인한 노동 축소 담론 등과도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고, 그로 인해 너무 적게 살아가고 있다.”
- 러셀
맡겨진 일 때문에 얼마간 '칸트의 시간'을 보내고, '러셀의 시간'을 생각해 보았다. 러셀 또한 게으름을 찬양한다고 하지만 실은 그 명석한 두뇌로 엄청난 업적을 이뤘기에 일반인들이 그대로 따라 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인류는 인간의 두뇌 노동을 상당 부분 줄여주는 AI 시대에 칸트와 러셀의 생각을 어떻게 조화롭게 활용해 더 나은 인생을 만들지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 할 순간을 맞고 있다. 공약으로 쏟아내는 정치권의 거대담론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40) Haydn - Clock Symphony - Andante - GECA/Greilsammer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