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그로의 땀, 연주자의 노고

멋진 아침을 열어주는 두 친구에게 전하는 고마움

by 호림

커피와 클래식 음악은 아침을 상쾌하게 열어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지금 마시는 이 검은 음료수의 재료인 커피 열매를 속속들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내 입에 도착하기까지 무수한 노고가 숨어있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커피 재배는 사람의 손이 많이 가고 혹독한 노동이 필요한 농업입니다. 그래서인지 세계인이 즐겨마시는 이 검은 음료에는 인권의 측면에서 흑역사도 숨어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 노예들이 미국을 거쳐 서인도제도 커피농장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이들이 얼마나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는지는 통계수치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으로 온 아프리카 흑인 노예의 수는 1,500만 명이나 되었는데 18세기 이후 생존 노예는 300만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물론 커피농장에서만 일하지 않고 목화농장이나 다양한 노동에 종사했겠지만 그 가혹한 노동여건은 어디나 비슷했습니다. 이런 유래 때문인지 커피를 유럽에서는 한때 '니그로의 땀'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아침을 여는 또 다른 친구인 클래식 음악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니 음악가들의 많은 노고가 숨어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규모를 생각해봅니다. 교향곡의 경우는 엄청난 수련기간을 거친 연주자들의 하모니, 악기를 만든 장인들의 숨결 하나하나가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손끝을 거쳐 태어납니다. 그 소리가 커피향이 우리의 코끝에 스치듯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음악 노동자라는 말은 좀 어색할 수 있지만 하이든과 관련된 일화 한토막을 소개하면 좀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이든은 짧은 기간이나마 베토벤의 스승이기도 했고, 교향곡의 아버지로 방대한 양의 작곡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귀족 가문의 후원 아래 안정적인 직업이 보장되었기 때문입니다.


헝가리의 에스테르하지 가문은 당시 유럽 최고의 부호였는데 하이든을 오케스트라급의 악단을 이끌고 상주하는 형태로 일하게 했습니다. 하이든과 그 악단은 가문의 대소사나 각종 연회에 불려가 연주해야 했기에 1년 내내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매년 여름이면 오스트리아 노이지들러 호수에 베르사유 궁전을 본뜬 별궁에 귀족들을 초청해 음악회와 파티를 즐기며 휴가를 보냈습니다. 1772년에는 이미 여름휴가 시즌이 다 지났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후작은 악단 단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불만에 찬 단원들이 하이든에게 이 유배와 다름없는 생활을 빨리 끝내 달라고 요청하자 하이든이 꾀를 내어 작곡한 곡이 있습니다.


사실 하이든도 수 차례 단원들에게 휴가라도 보내 줄 것을 후작에게 요청했지만 단호하게 거절을 당한 터였기에 궁여지책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가 새로 작곡한 교향곡은 느리게 시작해 춤곡으로 다소 빠르게 연주한 뒤 마지막 악장인 피날레 부분은 해 빠른 템포로 연주하는 구성입니다. 그러다 막바지에 음악이 갑자기 멈추는 듯 하가 다시 느린 템포로 새로운 음악을 연주하는가 했는데, 연주 도중 오보에 주자와 호른 주자가 악보와 짐을 챙겨 연주 도중 자리를 떠납니다.


뒤를 이어 바순 주자도 짐을 챙겨 무대를 빠져나갑니다. 이렇게 연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단원들이 하나 둘 무대를 모두 빠져나가고 무대 위에는 하이든과 바이올린 수석 및 부수석만 남게 됩니다. 천하의 후작도 이런 애교를 보고 휴가를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현재도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유머러스하게 재현되기도 하지만 당시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연주 현장에서는 좀 엉뚱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이 곡이 바로 그 유명한 <고별 교향곡, Farewell>입니다.

비단 음악과 커피의 세계만이 아니라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에는 보이지 않은 땀이 배어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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