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므파탈과 호모 에스테우스

퐁파두르와 수잔 발라동

by 호림

주관적일 수 있지만 아름다움을 보고

매력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때로 극한의 아름다움은 슬프고 괴로울 수도 있다.

어떤 선배를 알고 있다.

슈퍼 베스트셀러를 내고 단박에 부자가 된 뒤

풍부한 물질적 풍요와 함께

정신의 공허가 찾아왔다는 선배다.

그 공허를 이혼과 함께 거의 딸 뻘의 방송인이 채웠다.


그런데 팜므파탈에 가까운 형수의

늘 무서운 감시망에 시달리고

선배는 형수의 점점 더 높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면서 사업에 실패하고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남들이 손주를 볼 나이에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고 있는 삶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굳건해서

또 어느 모임에나 같이 동반하는

잉꼬부부로 잘 사는 듯했지만

실은 서서히 작은 틈은 생기고 있었다.


후배에 대한 신뢰감 때문인지

이런저런 속내를 이야기하면서

힘든 생활의 한켠을 내비쳤다.

어떤 이들은 복에 겨웠다고 할지 모르지만

실은 일상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선배와 둘만의 술자리가 길어지자

형수의 목소리가 휴대전화를 타고 들린다.

삶에서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는가 보다.

양귀비나 클레오파트라처럼 역사에 남은 팜므파탈의 운명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한 거플 가죽보다 그 깊은 내면을 볼 수 없는 인간에게 찾아오는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18세기를 풍미한 또 한 명의 팜므파탈이 있다.

본명은 잔느 앙투아네트 푸아송(Jeanne Antoinette Poisson). 퐁파두르 후작부인이다. 프랑스의 궁정인이며, 평민 출신이지만, 문화적 교양을 지녔고, 타고난 미모와 야심으로 의해 국왕 루이 15세(Louis XV, 재위 1715~74)의 총애를 받는 측실(側室)이 되었다(1745~1750). 그 후 왕의 심미안을 만족시키는 대화 상대로도 많은 조언을 했다. 국립 세브르 자기 공장이나 건조물 감독관이었던 실제(實弟) 마리니 후작의 건축 계획에 조언을 주는 한편, 백과전서 출판 계획을 후원해 왕가가 메디치 같은 역할을 하는 데에도 일조했다.

장 마르크 나티에 1746년 작, 마담 퐁파두르

카를 반 루(Carle Van Loo), 조제프 마리 비엥(Joseph-Marie Vien), 피가르, 부셰 등 수많은 화가와 조각가를 중용하기도 했다,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던 퐁파두르 부인은 이렇게 예술 쪽에서 루이 15세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술사가들은 18세기 로코코 미술의 핵심으로 퐁파두르 부인을 꼽기도 한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21세기 (성형) 미녀가 넘치는 코리아 서울의 남성도 설레게 하는 매력이 있다.

또 한 편의 그림에는 팜므파탈의 면모를 찾기 힘들지 모르지만, 멋진 여성이 등장한다. 근대 여성 화가들 중에는 모델에서 변신한 경우가 드물지만 꽤 있다. 그 유명한 마네의 올랭피아에서 나체로 등장한 여인 빅토린 뫼랑이 언뜻 떠오른다. 여기에 <오필리아>의 모델 엘리자베스 사달도 있다.


수잔 발라동은 청소부나 서커스단 무희 같은 당시로서는 밑바닥 생활을 경험했고, 화가 로트렉과도 염문을 뿌렸다. 그녀의 삶과 사랑은 한 편의 연애소설로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녀의 작품 <푸른 방>은 당시의 모델에 대한 관점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만드는 면이 있다.

수잔 발라동 1923년 작, 푸른 방

이 대담한 포즈를 보라. 팜므파탈은 아닐지 모르지만 푸른 방에서 당당하게 담배를 꼬나문 풍만한 여인이 어쩌면 어떤 귀부인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아마도 그림 속 여인은 온갖 기득권과 귀족들의 벽에 상처 받고 사랑에 울었던 여인, 수잔 발라동 그녀 자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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