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마음에 새길 문구를 보며
책더미 속에서
아버지의 글씨를 만났습니다.
오래전에 해주신 당부의 말씀이 새롭습니다.
철부지 시절에는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가치 있는 책을 쓰던지 책으로 쓸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살 것인지
제대로 된 삶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런 글귀를
아버지가 권해준 책에서 어린 시절에 보았기에
어렴풋이나마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책에 집착했던 세월이
돌아보면 때로는 허무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과정들 속에 빛나는 삶의 가치들을 찾았습니다.
책과의 사랑은 사람의 사랑과 유사한 면이 있었습니다.
고전으로 남은 책과의 사랑은 특히나 그랬습니다.
진정으로 사랑스럽고 가치 있는 책을 보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책을 덮을 시간이 가까워진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언젠가 그 책이 다음 책의 자리를 위해
내 눈과 손에서 멀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도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습니다.
아버지가 허망하게 돌아가셨을 때의 며칠은
어쩌면 그때까지의
내 정신의 성숙도보다 그 시기에 더 많이 부쩍 자라며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완전한 성인으로 자란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를 새삼 돌아보면서 인생에서의 품격을 생각하게 만드는
어느 선배의 글귀를 새삼 마음에 새기며
여러 가지 부족함에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은 어쩌면 책처럼 마지막 페이지로 달려가다가
책장을 덮을 때 시선에서 멀어지고
누구도 볼 수 없는 캄캄한 서고로
들어가는 운명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당신은 제발 내 곁에 영원히 듬직한 보스로 남아
사랑, 그 이상의 존재로 계셨어야 한다며
울부짖었던 시간이 생각납니다.
불효의 세월을 탓하면서 눈물을 흘려도
지난 시간은 돌릴 수 없었습니다.
그 울부짖음으로 뒤덮였던 감성의 시간이 끝나고
겨우 정신을 되찾았을 때
간신히 이성이 작동했습니다.
그 대상이 부모든 연인이든
누구나 사랑한다고 해서
어떤 사람을 영원히 자신의 품에 둘 수는 없다는
그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하는 이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기억 속에서 잠시 또는 영원히
잊히거나 심지어 버려질 수도 있지만,
생명이 있는 한 결코 다시 사랑받고 사랑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이란 직업을 가긴 생명체의 숙명이 아닐까 합니다.
긴 예술의 시간을 살 수 없는 인간으로서
어쩌면 영원의 진리가 숨어있을지도 모를 책을 한 가방 사서
집으로 오면서 이 녀석들과 며칠 같이 지내며 새해를 맞기로 했습니다.
설날 아침은
등은 굽어지고 피부에 주름은 늘어가는
어머니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드리는 일로 시작할까 합니다.
새해엔 어떤 선배님이 써주신 글처럼 크고 작은 상서로운 기운을 주위에
퍼뜨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음력설은 새해를 두 번 시작하는 것처럼
도전을 새롭게 시작할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의미가 있는 듯합니다.
작심삼일 흐지부지했던 마음을 다잡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