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른 화가

마네와 모네

by 호림

서양미술사에서 이름이 헛갈리는 화가가 있었다. 정확히 구분되는 점이 있는가 하면 유사한 점이 더 많았던 두 화가다. 같은 듯 다른 화가는 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마네(Edouard Manet)와 모네(Claude Monet), 인상파로 분류되는 두 화가들 이야기다.


마네는 아버지가 판사로 집안 형편이 유복했는데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 에드가르 드가와 잘 어울려 지내기도 했다. 낮에는 경마, 밤에는 숧 한잔 하는 상류층 문화를 같이 하며 그림을 즐겼다. 취미형 예술가로 드가처럼 예술을 즐기는 풍류객의 면모가 있었다.

생계형으로 열심히 그린 화가 모네는 어느 정도 인상파의 화풍을 몸에 익히고 명성도 얻었을 즈음 34세에 도시생활을 청산한다. 모네는 시골에 은거하다시피 하며 자신의 정원을 가꾼다. 그 유명은 모네의 <수련>연작들은 그가 직접 가꾼 연못에서 피어난 수련을 보고 그린 것이다. 작은 연못이 어쩌면 인상파의 대표 선수급으로 세계 화단을 정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네는 마네와 이름의 유사성으로 당시에 화단에 해프닝을 일으키기도 했다. 모네는 마네의 명성을 은근히 후광으로 삼아 전시를 하기도 했다. 그림으로 수입을 얻어야 하는 생계형 작가 모네였기에. 그렇지만 생활이 넉넉한 명문가의 도련님 마네는 이 동생을 괘씸하다고 내치지 않고 잘 품어주었다.

마네는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린다. 처음에는 법관인 아버지가 자신의 대를 이어 마네가 법조계에 종사하길 바라며 화가 지망을 좀체 허락하지 않았다. 세상의 쓴맛을 보면 달라지겠지 하는 심산으로 아버지가 17세 때 남아메리카 항로의 선원 수습생으로 마네를 보냈는지 마네 스스로 갔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아무튼 남아메리카를 항해를 마친 마네는 1850년에 쿠튀르의 아틀리에에 들어가 그림을 익혔다.


마네는 1861년 살롱전에 턱걸이로 입선한 바 있으나 그것으로 화단의 인정을 받기엔 역부족이었다. 마네의 그림은 당시로서는 너무나 이색적이었던 작품이었기에 낙선에 낙선을 거듭했다. 이쯤 되면 자신의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경기의 룰이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이 귀공자는 세상의 '룰'을 자신의 방식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가 기획한 1863년의 낙선전(落選展)에는 낙선했지만 가치 있는 그림들을 전시해 그 유명한 《풀밭 위의 점심 Le Déjeuner sur l’herbe》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쯤 되면 "역시, 대가들은 '룰'을 바꿀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니까"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마네는 당시의 주류 화풍을 거스르는 대담한 기법에 대해 후대는 인상파의 아버지라는 명성을 부여했고 피사로, 모네, 시슬레 같은 일련의 인상주의 화풍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막시밀리안의 처형 L’Exécution de Maximilien》(1867)를 비롯한 걸작 우화를 남기고 51세의 다소 짧은 생애를 고향 파리에서 마쳤다. 어두운 화면에 빛을 이용한 '밝음'을 도입한 화가로 화단 혁신의 선봉장이 되었던 이가 마네였다.


말년의 마네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받을 정도의 명예도 얻었지만, 원치 않았던 류머티즘이라는 관절병을 얻어 고생하며 육체노동 강도가 비교적 적은 파스텔화를 그리기도 했다. 신체는 내구성이 한계가 있기에 언젠가 탈이 나고 당시 의술로는 치료에 한계가 있었다, 말년의 모네도 백내장을 앓아서 색감이 현저히 떨어진 상황에서 사물을 더욱 흐릿하게 묘사했지만, 결코 화가로서의 열정은 흐릿해지지 않았다.

예술사를 돌아보면 이렇게 유무명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병명도 모른 채 정신적 고독과 육체적 고통을 안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처절한 예술혼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마네와 모네는 인상파의 큰 줄기를 만들 정도로 빛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사물의 모습을 그의 붓으로 아름답게 그려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했다. 그것으로 둘을 묶어서 기억하고 미술로 밥 먹고 사는 이가 아니라면 두 사람의 이름은 헛갈려도 그만이다. 굳이 시험에 나오는 문제라면 옛날에 수없이 써먹은 기억법을 적용해보자. 도련님과 마나님은 운율이 유사하나 "도련님 마네", "생계형 모네" 정도로 기억하면 어떨까.


마네 Manet와 모네 Monet, 이름엔 철자 하나 차이가 있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은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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