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설이 내리는 새해 아침에

by 호림

새해를 알리는 서설이 맹렬합니다. 이 눈처럼 새해의 복을 기원하는 휴대폰의 반가운 메시지를 접하면서 생각해봅니다. 역설적으로 복은 그만큼 발에 차이듯 많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그렇게 갈구하는 것이겠지요.


아마 행복과 영생으로 인생이 지속된다면 아마도 지루해서 못 견딜 것입니다. 고통과 좌절의 시간이 있어서 행복은 더 빛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왜냐하면 괴로움이란 위대한 것이니까요." "괴로움 속에는 사상이 있으니까요."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한 말로 기억합니다. 고통을 묘사하는 문학작품의 메시지는 전합니다. 고통으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으라고. 고통 없는 인생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고통의 터널에 서 있는 사람은 쉽지 않겠지만 그것을 깊이 받아들이고 또 다른 차원의 성숙한 삶을 준비하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합니다.

15.jpeg

새해에 행복하고 복 받으라고 하지만, 매일이 행복이 충만한 삶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설사 크고 작은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극복할 지혜를 가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더 깊고 넓은 고통의 골짜기에서 신음하는 주변에 시선을 돌리면 자신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열반에 든 틱낫한 스님은 "나에게 1은 누군가에게 100이다. 그 1을 귀하게 여겨라"라고 했고, 기적은 희박한 공기 속이나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일라고 했습니다. 살아가는 기적 자체를 축복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지요.


새해에 집어 든 책은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였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마지막 강의 기록인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How will You measure your life?)'입니다.

17 (1).jpeg

크리스텐슨 교수는 하버드 경영대학원과 옥스퍼드대 로즈 장학생 출신 동창생들이 매우 스마트하고 학업 성취가 뛰어났으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회적 지위를 얻었지만, 감옥에 가거나 심지어는 자살하는 불행한 사태를 가끔 보았다고 합니다. 관계가 망가진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진단합니다.


인간의 사고 능력에는 제한이 있어서 자신의 고통에만 집중하고 항상 '큰 그림'을 볼 수 없다는 것이 크리스텐슨의 분석입니다.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여유가 없고 비교를 통해 조금 친구들보다 뒤처진다거나 성공을 위한 퍼즐 조각 하나가 빠지면 금세 포기하게 되는 것이 절망의 원인이 아닐까요. 크리스텐슨은 종강일에 수강생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적게 한다고 합니다.


"첫째, 내가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성공하고 행복할까? 둘째, 배우자, 자식, 친척, 친구들과의 관계가 계속해서 행복의 원천이 될까? 셋째, 나는 성실한 삶을 살고, 감옥에 갈 일이 없을까?"

책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내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유일한 평가 기준은 내가 일대일로 만나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줄 수 있었던 개인들임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지위와 명예, 부의 축적, 학업의 성취 만이 성공의 기준이 아니고, 나로 인해 좋은 쪽으로 변화한 사람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성공한 사람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새해에 크리스텐슨 교수가 준 지혜를 마음에 새겨봅니다. 주위에 고통 속에 있는 분들과 아픔을 나누고 내가 가진 고통은 주위에 도움을 청하는 것도 현명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17 (2).jpeg

지난해 뜻하지 않게 당신에게 크고 작은 고통을 안긴 이도 있을 것이고, 선한 심성의 당신이지만 뜻하지 않게 아주 미세하게라도 타인에게 고통을 준 경우도 있을 듯합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을 흰 눈으로 삼아서 깨끗하게 덮고 새해의 첫 날을 시작하면 어떨까 합니다.


받은 상처는 모래에 기록하고 받은 은혜는 대리석에 새겨라.

- 벤자민 프랭클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말을 좀 길게 풀어서 쓰겠습니다.


"아마 새해에도 삶의 목적의식이 뚜렷한 당신은 고난을 통해 더 강해질 것입니다.

그것이 타인이 준 고통이든 당신 스스로 원인을 만든 것이든"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아버지와 스승의 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