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자화상을 보며

독일 미술사의 거인, 뒤러의 모습에 비춘 친구

by 호림

독일 하면 예술분야에서는 우선 베토벤이 떠오르고 고전음악 작곡가가 풍년이지만 화가는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독일 미술사에서 압도적 스타는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다. 뒤러는 북유럽의 다빈치라 불릴 정도며 독일 회화의 자존심이시도 하다.

과거 한국의 7,80년대에는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는 5형제 6남매가 흔한 시절이었다. 언니가 인천 성냥공장에 나가고 오빠는 부산 신발공장에서 송금해서 집안을 일으키고 형제자매들이 서로 의지하면서 학비를 대며 커가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대학 진학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지금의 현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형제 많은 집안에 태어나 미술공부를 하고 싶어도 재정적으로 뒷받침이 되지 않아서 한국의 7,80년대 서민 가정의 풍속도처럼 지내며 뜻을 이룬 화가가 뒤러다. 뒤러 형제는 형과 동생이 제비뽑기로 운명을 결정해서 동생이 미술공부를 먼저 시작했다. 광부로 4년을 보낸 형은 이미 피폐해진 몸과 손으로 그림을 포기한다. 형이 번 돈으로 동생은 미술공부를 한 뒤 나중에는 이탈리아 유학까지 가서 라파엘로를 만나고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의 선진 회화기법을 공부하기도 했다.

친구 중에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은 친구가 있었다. 친구의 형은 어렵게 막노동을 해 동생의 대학 학비를 보태며 젊은 시절 시지프스의 돌덩이를 날았다. 형의 노고에 힘입어 동생이 사법시험에 합격해 자리를 잡자 형은 뒤늦게 동생의 도움으로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을 졸업하고 늦깎이 변호사가 된 경우가 있다. 의지가 대단한 형제들이다.


형이 꿈에 그리던 화가가 되지 못했기에 시나리오는 뒤러 집안과 조금 달라졌지만 뒤러의 자화상을 보면 그 친구의 집이 떠오른다. 예술가의 길로 들어선 뒤러는 아마도 형에게 빚진 미안함을 평생 캔버스에 쏟아부었을지도 모른다.


위의 그림은 미국에서 한 남성이 단돈 3만 원에 구매했지만 수백억 원의 가치를 가진 르네상스 시대 유명 화가 뒤러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이 작품은 여성이 아이를 안고 있는 스케치로, 하단 중앙에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를 뜻하는 'A.D'라는 표식이 선명하다. 한 사나이의 행운은 우리 돈 1억 여 원으로 그림을 수집가에게 되파는 것으로 끝났지만, 현재 작품의 추정 가는 약 5000만 달러(593억 원)다.


<풀로 덮인 벤치에 앉은 꽃을 든 아이와 처녀>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세계 유수의 갤러리에 전시되며 진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신년에 계획한 일들이 있다면 뒤러의 자화상을 뚫어지게 보면서 스스로 빛나는 내면의 가치를 찾아보면 어떨까. 아마 예술을 향한 갈구가 보일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유복한 환경은 많은 혜택을 줄 수 있지만 '절실함'을 이길 수는 없었다.


뒤러가 증명하듯 만사가 해결된 편안한 환경만이 예술가의 조건은 아닌 듯하다. 길을 새롭게 만들고 가시밭길을 헤쳐가는 가운데 예술은 움틀 수 있고 그 인생 자체가 예술이 되는 경우도 무수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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