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이 그 솜씨를 존경하고 사랑했던 카라바조
살인을 두 번씩이나 했다. 그때마다 도망자 신세가 되기도 했지만 그림 솜씨로 사면을 받은 이가 있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성의 권위에 도전하는 대담한 화풍, 행동거지는 돌깡패였지만 그 그림 솜씨는 모두가 추앙해 귀족들의 의뢰가 이어졌던 화가. 베르메르, 루벤스, 렘브란트 같은 이들이 그 천재성을 존경한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 이야기다.
카라바조의 그림 솜씨는 신출귀몰한데 그림 그리는 시간도 다른 화가들이 몇 달 걸릴 때 며칠이나 1,2주에 뚝딱 그려내는 속성파이기도 했다. 의뢰자가 줄을 이어 돈을 잘 벌었지만 이내 탕진했다. 주위에는 싸움꾼들이나 사회 부적응 건달들이 많았고 그들과 유흥을 즐겼다.
이 그림은 성경의 이야기로 최후의 만찬 직후 유다가 예수를 배반해 로마 병사를 불러 예수를 체포하게 하는 장면이다. 검은 바탕색이 강렬한 몰입 효과를 주기는 그림으로 이런 기법도 당시로서는 이채로운 것이어서 카라바조에 열광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재주가 덕을 이기는 '재승덕'의 모델이라 본받을 화가는 절대 아니지만 그 솜씨만큼은 본받고 싶을 화가가 아닐까. 덕이 그 재주를 조금만 눌렀으면 그 괄괄한 기질과 유흥에 탐닉하는 시간도 줄이고 해서 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화가가 되지 않았을까.
살인자 신세로 몰타로 도망갔을 때 기사단 단장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사면을 얻어냈다. 위의 그림이다. 거기서 나아가 기사단에 합류했지만 카라바조는 끝내 재범을 저질렀다. 동료 기사단과 갈등 끝에 살인을 한 것이다. 그림으로 다시 한번 사면을 받았지만 그는 로마 입성을 앞두고 열병으로 사망한다.
천재성과 악마성을 동시에 지녔던 풍운아 카라바조는 어떤 면에서 회화분야의 파가니니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파가니니의 실력과 괴짜 기질은 널리 알려졌지만, 악마성 측면에서는 카라바조가 더 우위에 있을 듯하다.
한 가지 살펴볼 일은 카라바조의 살인 두 건이 모두 우발적인 것이어서 반드시 카라바조의 성정이 악독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그 당시 16, 7세기 이탈리아 사화의 인권이나 분위기도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 칼을 들고 결투하다 죽고 죽이는 경우가 흔한 일이어서 현재와 동일 선상의 비교는 온당치 않을 것이다.
아래 그림은 생생한 묘사에 대한 화가들의 찬사가 이어진 카라바조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