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시계와 예술의 시간
예술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생각과 예술은 인간을 위할 때만 의의가 있다는 생각은 가끔 대립하는 의견입니다. 곰곰 생각해보면 너무 철학적인 논쟁이라 그 얘기가 그 얘기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예술가는 그 짧은 생의 유한성을 인식하기에 영원을 사는 예술을 만들고 거기에 혼을 담으려고 한다는 점에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겠지요. 위대한 예술의 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삶에 대한 한탄은 다양한 문학작품으로 불로초를 구하는 진시황의 마음으로 잘 나타납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 나이를 의식하지 않은 시대라고 해도 흔히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하면서" 나이를 먹는 것이 사회적 제약이 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호적을 고쳐 젊어지려고 법의 심판을 호소한 이가 있었습니다.
2018년 당시 69세의 네덜란드 남성 에밀 레이틀밴드는 자신의 나이를 49세 즉, 2108년 당시 기준으로 1969년생으로 고쳐달라고 법원에 신청했습니다. 그 근거로 의사가 자신의 신체 나이를 45세로 판단했고, 실제로 또래들보다 현저히 젊은 심신상태이므로 자신의 구직이나 연애 같은 사회적 활동이 나이를 이유로 상당 부분 제약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였습니다.
2020년을 기점으로 지구 상에서 5세 이하 인구보다 65세 이상 인구가 최초로 더 많아졌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의료기술의 발전과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으로 평균 연령은 급속히 늘어가고 나이에 대한 종래의 기준은 새로운 시험대에 서 있습니다.
네덜란드 사나이가 승소할 가능성이 거의 없듯이 삶의 유한성을 부정할 정도로 획기적인 의학발전은 쉽지 않을 듯합니다. 예술의 시간을 살 수는 없기에 영원한 가치를 부단히 찾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합니다.
설도 이제 코앞에 닥치고 꼼짝없이 떡국 한 그릇과 함께 한 살을 더 먹어야 합니다. 나이가 주는 미덕도 많기에 결코 슬퍼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물론 거기에 걸맞은 지혜와 경륜도 장착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