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예술

어느 천재 화가의 짧은 삶, 긴 예술

by 호림

오스트리아 빈국립예술학교에 미술로 입학해 같이 공부할 뻔한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청년 A는 실력이 출중해 너끈히 합격했지만, 한 살 차이의 청년 B는 1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학교에 노크했지만 그림 솜씨가 변변치 않아서 입학이 좌절되었습니다.


역사의 가정은 무의미할 수 있지만, 그 어떤 순간의 작은 계기들이 거대한 나비효과가 되어 폭풍우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청년 A는 에곤 살레, B는 히틀러입니다. 히틀러가 미술학도가 되었다면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아마도 없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의 가정은 에곤 살레가 피카소나 장수한 화가들의 20대 보다 못하지 않았고 오히려 능가하는 면이 있었기에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반 고흐의 이름보다 더 큰 이름으로 미술계가 기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짧은 생애는 비슷하지만 귀를 베어낸 자화상이 강렬한 화가는 사창가 여인들 외에는 러브스토리가 변변치 않았지만 실레의 삶이 10년이나 더 짧아도 사랑은 풍성했습니다.


실레는 그림의 모델이었던 발리라는 여인과 동거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여인 에디트 하름스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곧 군대에 입대했고 이미 화가로 인정받았기에 실레는 군 근무지 부근에 신혼살림을 차릴 수 있는 군 당국의 특혜를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미 미술계의 거물이 된 클림트의 후견이 있어서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받기도 했습니다.

클림트는 비혼남이었지만 여성 모델들 중에서 열의 아홉이 그의 애인이나 다름없었던 자유분방한 화가였습니다. 그런데 클림트의 여인일지도 모르는 17세의 발리를 모델로 청해 그림을 그렸던 21세의 실레는 곧 사랑에 빠집니다. 꼬리가 잡혀 클림트가 알게 되자 "이크 이걸로 끝이구나"하고 클림트 앞에 고개를 숙이는 신세가 되기도 했습니다.


감히 후견인의 여인을 탐하다니... 그렇지만 클림트 '따거'는 통 크게 받아넘기며 "혈기왕성한 젊은이의 사랑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지"하면서 '특별사면'시켜주었고 후원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고약한 놈이라고 내치기엔 실레의 그림 솜씨가 너무 뛰어났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봐 젊은이 내게는 아직 열두명의 여인이 남아있다네"하는 심정이었을까요.

여인의 인체를 과감히 묘사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이 젊은 표현주의 화가는 28세에 당시 유행하는 스페인 독감으로 죽었지만 영원히 남을 수 있는 궁극의 미술을 추구했습니다. 요절한 천재화가 실레는 아직 우리에게는 20대로 살아있습니다. 그의 예술이 영원의 시간을 살고 있기에.


예술은 유행이 아니다.

예술은 영원해야 한다.

- 에곤 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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