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예술의 길
대만의 평론가이자 인문학자 양자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대해
영원한 소년의 정서가 들어있다고
하루키를 평가한다.
양자오의 말대로 하루키의 글은 늙지 않는다.
일흔이 넘어도
마라톤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맥주를 즐기기에
몸 또한 노화를 모르는 듯하다.
<노인과 바다>에서
거대한 바다 고기와 씨름하는 주인공은
헤밍웨이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있다.
권투, 낚시에서 사냥까지...
강력한 적을 가상하고 분투하는
헤밍웨이였기에
이런 막강한 상대를 가진 스포츠와
레저를 즐겼을 것으로 짐작한다.
헤밍웨이가 삶의 처절함의 극한인
실제의 전장에 나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
스페인 내전에서 종군기자로
참전해 부상까지 당하며
쓴 작품이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였기에.
헤밍웨이나 하루키 같이
자신만의 극한의 몰입으로
성취한 작가는 넘사벽의 별종으로 취급하자.
그렇더라도
일반적인 쓰기의 거인들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많은 이들은 막연하게나마
작가의 자유로움을 상상하고
그 처절한 고독보다
무한의 자유와 낭만,
세간의 부러움을 받는 시선을
동경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작가들은 어떤 생각으로
자신의 펜을 가다듬고
많은 이들을 감동시킬까?
타자기와 노트북이건
김훈 작가가 고집하는 연필이건 간에.
프랑스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쓰는 것이 쓰는 것을 가르쳤다"라고 하고,
"쓰는 것의 본질은 고독"이라고 했다.
고독 속에서
더 나은 실패를 생각하는 것
그것이 명작 잉태의 비결이 아닐까.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75세의 폴 오스터는
아직도 50년 된 올림피아 타자기로
하루 11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글쓰기에 몰입한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고통받는 이때에
음식도 못 주고 폭탄도 못 막는 글쓰기의
한계를 질문하자
글쓰기는
낯선 이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한다.
오스터는 사뮈엘 베케트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도 더 나은 실패(better fail)를
준비할 뿐이라고 겸손을 보탠다.
폴 오스터의 말처럼
문학이든 예술작품이든
작가가 가는 예술의 길은
더 나은 실패를 준비하는 길이 아닐까.
아마도 삶에서
하루하루 더 나은 실패를 준비하다 보면
어느덧 성공이란 항구가
저 멀리서 손짓할지도 모른다.
만개한 봄꽃들도
처절한 겨울의 칼바람과 냉기를
온몸으로 견뎠기에 더 아름답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