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강을 건널 때

어떤 죽음과 겨울이 가르쳐준 겸손

by 호림

이영광 시인은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택배 노동자는

마치 지구에

돈 벌러 온 것처럼

위험한 곡예를 일상화한

오토바이 레이서인

경우가 많다.


큰 기업의 오너가

짧은 생을 마친 뉴스만큼이나.

택배 노동자의 죽음을

뉴스로 접하는 마음은 착잡하다.

그 노동자에게

일가족의 생계가 걸린 질주는

그 어떤 법규보다 소중할 수 있다.

이어령 선생은

지성과 영성 사이에서

말년의 쓸쓸함과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감을 표현했다.


그의 글은

어떤 깊은 지성과

감성으로도

죽음을 정복할 수 없기에

유한한 생 앞에서

무한히 겸손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유고에서 발견한

한 지성의 죽음 앞에

두렵고 떨렸던

솔직한 면모가 오히려

담담하고 강인한 모습보다

더 인간적이다.



죽음에는 수사학이 없다

이어령


내 일찍이 수사학 공부를 했다

내 일찍이 수하학 교수가 되어

강의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수사학은 없다

어떤 조사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하다


어떤 조화에도 수사학은 없다

회사 이름과 회장 이름은 있어도

수사학은 없다


반어법과 과장법도 은유도 환유도

죽은 자나 산 자나 입을 다문다


어떤 꽃도

죽음을 장식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말도

죽음을 수식하는 직유법은 없다


오직 검은색만이 있고 말은 없다

생명을 예찬하기

더없이 좋은 봄이다.

죽음 앞에 겸손하게 되는

겨울을

쉽게 잊고 지내게 된다.

길고 추웠던 그 겨울을.


코로나 시대가 지나고 나면

우린 또 그 시간을

쉽게 망각할 것이다.

사람이 그립고 외롭던 시절,

두려움과 쓸쓸함이

관계망에 끼어들었던 나날들.

때로 삶에서

망각보다 좋은 약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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