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과 모차르트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언뜻 베토벤의 이미지가 모차르트보다 노련하게 보이기에 더 나이가 많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모차르트가 14살 위였습니다.
베토벤의 연주를 감상한 모차르트는 이 젊은이를 눈여겨보라고 주위에 당부할 정도로 베토벤의 장래성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독보적인 피아노 연주로 클래식 음악사에 남은 리스트와 쇼팽도 동시대를 살며 우정을 과시했습니다.
얼마 전 <총 맞은 마돈나>가 크리스티에서 2,500억 원에 낙찰되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얼굴을 그린 화가로 알려진 앤디 워홀과 장 미셀 바스키야도 동성애자로 의심받을 정도로 돈독한 관계로 지냈습니다. 바스키야가 그를 발굴하다시피 한 갤러리스트 가고시안과 만나지 않았다면 28년 간의 짧은 삶에서 그렇게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미술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던 라틴계 흑인 청년을 기꺼이 그의 사숙에서 생활비를 제공하며 후원했던 가고시안의 안목도 대단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백인 아가씨와 동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조르는 이 청년 예술가를 품어주다니 가고시안의 포용력 또한 대단했습니다. 그 백인 여성이 바로 후일의 팝스타 마돈나였습니다.
어느 분야이건 간에 만남은 그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나 예술계에서는 더 드라마틱한 경우가 많습니다.
동화작가 정채봉은 가장 좋은 만남은 손수건 같은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힘들 땐 땀을 닦아주고 슬픈 땐 눈물을 닦아주는 만남이라는 것입니다. 정채봉 작가는 좋지 못한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피었다가 지면 만나지 않는 야속함과 허망함 때문이겠지요.
비단 이성이나 동성 간을 막론하고 상대방의 화려함이나 자신의 이해타산만을 계산하고 만난다면 그 만남의 끝이 좋을 수가 없겠지요. 은은히 그 사람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오랜 만남들은 관계의 예술로 빛날 것입니다. 오늘도 멋진 만남의 씨앗을 심을 수도 있는 하루가 밝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