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잉태하고 숙성시킨 만남
예술가들도 자신만의 방에서 붓과 펜으로 고독과 씨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동시대에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서 서로 격려하고 우리의 일이 헛된 것이 아닐 거라며 안개 낀 길을 용감하게 걸어간 경우가 많다. 특히나 평생에 자극제가 된 만남은 그 예술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뮤즈들에 둘러싸여 살다시피 한 바람둥이였지만, 폴 엘뤼아르만큼 깊은 우정으로 피카소에게 예술적 영감을 준 이는 없었다. 몇 마디 언어로 본질을 짚어내는 언어를 구사한 시인 엘뤼아르는 그에게 늘 경탄의 대상이었다. 엘뤼아르 또한 파카소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그림을 사기도 하며 끈끈한 우정을 이어왔다.
그 유명한 <게르니카> 역시 엘뤼아르에게서 배운 정치적 시야를 통해 현실참여적인 작가의 면모를 보인 작품이다. 두 사람의 깊은 우정은 엘뤼아르의 부인이 피카소의 초상화 모델이 되는 것으로도 발전했다. 여성은 자신의 애인이거나 예술을 위해 소모될 대상으로만 생각한 경우가 대부분인 피카소에게 또 다른 여성성을 느끼게 해 준 경우다.
알베르 카뮈와 여배우 마리아 카자레스의 만남은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날에 이루어졌다.
카뮈는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만남이라는 모험> 샤를 페팽, P. 101
세기의 지성, 카뮈에게 자신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준 존재가 카자레스였다.
우리는 만남을 통해 서로 지성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하기도 하고 충만한 우정과 사랑의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인생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반자를 만날 수도 있다. 그 만남 속에서 같이 성장하는 일은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일이고 그 만남들이 인생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피카소와 카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