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의 지성은
자신의 모든 것을 회의했다.
그것이 반드시 지성에서 영성으로 옮겨가
신을 찾는 몸짓인지는 잘 모른다.
자신의 언어로 쌓아 올린 바벨탑에 대한
허무를 토로하기도 하고
뭔가를 향한 아련한 그리움을
말하기도 했다.
코로나 완치 후
최근 만난 선배님도
건강이 상하면
정치한 지성으로 직조한 것들이
무너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게 되고
자신보다 더 심할 수도 있는
타인의 고통,
사회의 공동선 같은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진다며
아직은 피가 뜨거운 후배에게
건강의 축복을 일러주신다.
노환으로 고통받으며 써 내려간
고 이어령 선생의 유고가 울림을 주었다.
그림이 없었다면
사방의 벽은
벽의 공허는
무엇으로 채우나.
그림이 없었다면
화가의 마음은
마음의 공허는
무엇으로 채우나.
그림은 그리다에서
나온 말인가 본데
그리다는
그리움이기도 하다.
그리움이 없었다면
잃어버린 시간은
시간의 공허는
무엇으로 채우나.
오늘 그 공허로 하여
그림을 그린다.
모든 것들 그리워한다.
그리다는 그림이고 그리움이다.
이어령 <눈물 한 방울> P.6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