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고통과 즐거움

좀 더 나은 실패를 위하여

by 호림

글쓰기는 말과는 다르게 품이 드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펜을 들거나 자판 앞에 손을 얹으면 저절로 낱말이 쏟아져 명문장이 탄생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썼을 일기도 숙제하듯 의무로 쓰면 고통이지만 성찰을 위해서 쓰면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글쓰기는 고통이 아닌 치유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나태주 시인은 몸이 아픈 중에도 아내가 말려도 펜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글쓰기가 병을 치료해주었다며 이렇게 말한다.


마음속 상처, 두려움, 우울함, 절망감, 그 모든 찌꺼기들을 글쓰기가 가져갔다. 병원 의사들이 육신의 병을 치료해주었다면 글쓰기는 마음의 병을 치유해준 셈이다. 글쓰기가 그렇게 힘이 세고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논픽션의 경우엔 엄밀한 팩트에 대한 체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남산의 부장들>의 저자인 가천대 김충식 부총장은 " 남들이 상상했던 팩트가 아니라 당신의 호미를 가지고 직접 파낸 팩트가 무엇인지 확인해봐라. 논픽션 작가는 신성한 팩트를 통해서 울림을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글쓰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세계적인 고령 장수국가인 일본은 환갑을 넘어 주목받는 작가들이 많다. 75세의 구로다 나쓰코는 아쿠타가와상을 최고령으로 수상했고, 후지사키 가즈오는 65세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74세에 군조신인문학상을 받았다. 이 정도는 어린이다. 99세에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펴낸 시바타 도요 할머니도 있다. 이 시집은 무려 150만 부가 팔렸다. 한국에는 당시로서는 고령인 불혹을 넘긴 박완서의 늦깎이 신인 데뷔가 화제가 된 바 있고, 2006년에는 60세 신인 박찬순이 신춘문예로 등단한 바 있다.

반드시 권위 있는 상을 받아서 등단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문맹을 탈출하고자 만학의 꿈을 글로 이루고자 펜을 드는 노인들도 있다. 72세까지 문맹이었던 한충자 할머니는 죽기 전에 이름 석 자 써보고 싶어서 한글을 배웠고 86세에 시인으로 데뷔했다. '까막눈 시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할머니는 밭일하다가 들국화 냄새도 맡으며 문득 시심이 깃드는 일상을 고백한다.


단박에 일필휘지로 완벽한 문장을 생산하는 재주를 가진 이는 드물다. 미국의 소설가 폴 오스터도 이렇게 고백한다.


사뮈엘 베케트 조차도 자기 작품에 확신이 없었습니다. 나 역시 내 작품이 좋다는 확신은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어요. 글을 쓰기 시작할 땐 완벽한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건 절대 불가능하죠. 그렇기 때문에 우린 계속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베케트의 말대로 우리는 좀 더 나은 실패(fail better)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 동아일보 2022. 3. 28자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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