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위한 순교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던 슬픈 화가를 기리며

by 호림

세상에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밖에 없다는 말처럼 장래가 확실히 보장된 직업은 없다.


라이선스 취득이 어렵거나 진입하기 어려운 직업은 어느 정도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고액의 연봉을 보장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 문턱은 의지만 있으면 높지 않으나 불안정성은 대단히 높은 분야가 예술이다.


일부 스타들이 돈과 명예를 거머쥐는 모습은 하나의 판타지를 자극하지만 대개는 생전에 꽃길보다 가시덤불을 헤치며 살아가는 경우다 많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예술가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가지는 이면에는 하고 많은 직업군 중에 그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것이 일종의 연민의 정을 건드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에서 온 젊은 예술가는 파리의 하늘 아래 기댈 곳이 없었다. 그러다 불꽃같은 사랑을 만났다. 깐깐한 처가의 결혼 승낙 조차도 얻지 못해 동거에 들어갔다. 긴긴 겨울엔 난방비가 없어서 딸과 아내를 껴안고 한겨울을 지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가난한 예술가는 한동안 이웃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결핵성 뇌척수막염으로 의식을 잃고 누워있었고 아내 에뷔테른은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 남편이 먼저 갔다. 어린 딸을 남겨 둔 채로. 35세의 젊은 화가의 장례식엔 당대의 화가들이 운집했지만 그의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이 죽자 공황상태로 지내다 사망 이틀 후 집 창문으로 뛰어내려 자살한다. 뱃속의 아이와 함께. 아마데오 모딜리아니의 슬픈 이야기다. 에뷔테른의 가족들은 분노할 자격이 없을지 모르지만, 딸을 앗아간 이 예술가에게 치미는 화를 참을 수 없었기에 묘소의 합장을 끝내 반대했다.


모딜리아니 사후 그림 값은 천배 이상 올랐다. 20세기 초 파리의 기라성 같은 화가들 틈바구니에서 모딜리아니의 이름은 생존 당시는 빛을 못보다 사후 차츰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인상파나 특정 유파로 규정지을 수 없는 독특한 화풍은 아프리카인들의 석상이나 다양한 요소들이 반영된 개성 있는 인물화로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었다. 그 애달픈 사랑이야기와 함께.


모딜리아니는 상징적이고 시적인 표현으로 많은 이들에게 예술가의 쓸쓸한 뒷모습을 생각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화가였다.

동양인의 눈처럼 작고 가늘게 그린 그림 속 인물의 눈을 보고 아내가 " 당신은 왜 눈동자는 그리지 않아요?"

라고 묻자 그 대답이 여운을 남긴다. "내가 만약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된다면 눈동자도 그릴 것입니다."


우린 떄로 고독이 두려워 겉치레의 만남들 속에 눈동자에 담긴 영혼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근원적인 질문을 요절한 화가가 가을바람에 실어 보냈기에. 그 짧고도 슬픈 자신의 삶 이야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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