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본캐와 부캐

by 호림

직업이 대단히 세분화되기 전 중세와 근세의 대학은 전공 또한 신학, 철학, 의학, 법학과 같은 몇 가지에 국한되었다. 음악가들도 현대의 '음악대학'같은 체계적인 교육 커리큘럼 개념보다는 도제식 수련이나 사사에 의존해 기량을 닦았다.


베토벤과 모차르트 같이 음악가 부친을 만나 영재교육을 받고 운명처럼 음악에 삶을 바친 경우도 있고, 멘델스존처럼 부유한 금융인의 자제로 먹고사는 걱정 없이 예술을 즐기다시피 한 경우도 있다. 슈베르트는 음악을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같은 연인처럼 사랑하며 가난과 고독 속에서 빛나는 선율들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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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든 우리가 기억하는 멋진 선율을 만들어낸 위대한 작곡가들은 취미로 적당히 해서 불후의 명곡을 탄생시킨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귀족이나 후원자의 도움이 있었지만 삶을 송두리째 바친 예술혼이 걸작의 거름이 된 경우가 많다.


베를리오즈는 의학도에서 급하게 차선을 변경해 음악에 평생을 바치고 <환상교향곡>이라는 표제음악의 상징과도 같은 곡을 만들었다. 슈만이나 차이코프스키도 법학도에서 전향한 경우다. 법학도가 되라는 아버지의 기대에 반기를 들었던 다락방의 어린 슈만에게는 몰래 악보를 넣어주고 피아노를 치게 한 어머니의 지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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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관원 루소, 변호사 마티스보다 예술가라는 큰 이름으로 남은 이들도 삶의 차선을 급변경하거나 완만히 옮겨 간 경우다. 시인이자 화가에 극장 경영주이기도 했던 호프만은 '본캐'와 '부캐'가 어떤 것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여러 가지 직업을 가졌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명곡을 탄생시킬 정도로 놀라운 재능을 발휘했다. 클래식 관련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베를리오즈가 의학도의 길을 접고, 슈만이 부친의 법학도 권유를 포기하고 음악가의 길을 간 것은 적성이 맞고 좋아하는 분야에 뛰어들고픈 의지 때문입니다. 가족들의 반대가 있었다지만 이들이 전공 분야를 일찌감치 바꾼 건 오늘날 클래식 음악 팬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요. 물론 그 당시 그들의 부모들은 야속했을 것입니다만. - <당신을 위한 클래식> 전영범 지음,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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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으로 전공과 직업의 이정표에 중요한 변곡점을 지난 우리의 어린 친구들이 밥벌이의 안정성과 평생의 업을 고민하는 시기가 되었다. 성인으로 사회에 첫걸음을 내디딘 스무 살 무렵의 시선이 모든 걸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기억하고 결과를 담담히 기다렸으면 한다. 이 오펜바흐의 선율에 어깨를 흔들고 고단한 수험생활의 짐을 잠시라도 내려놓으며.


당신들에겐 이 음악의 선율보다 더 화려하고 찬란한 미래가 기다리기에.


(399) 오펜바흐 '천국과 지옥' 중 '캉캉', Orphée aux Enfers 'cancan' - Jacques Offenbach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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