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의 질문

어느 쓸쓸한 노년을 읽으며

by 호림

1798년 73세로 사망해 당시로서는 짧은 인생은 아니었다. “자신을 모르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좌우명을 가졌던 사람이기도 하다.

사망하기 전 그는 현재 체코령이 된 보헤미아의 둑스 성의 작은 도서관에서 자신의 굴곡진 삶, 영욕이 교차하는 삶을 돌아보고 자서전을 쓰고 있었다. 가족도 일가도 옆에 없고 초라한 늙은이가 된 그의 젊은 시절 관심사는 오직 여성이었다. 현재는 쓸쓸한 노년이 그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게 할 뿐이다.


자신의 이름이 보통명사가 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중의 한사람인 카사노바의 말년의 모습이다. 바람둥이의 대명사가 된 이 남성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여자란 책과 같아서 좋든 나쁘든 처음에는 겉표지로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첫 부분이 채미 없으면 더 이상 그 책을 읽고 싶은 욕망을 느끼지 못하듯이 여자에 대한 욕망은 우리가 느끼는 흥미와 정비례한다. 여자의 외양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책의 겉표지와 같고,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남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부위인 발은 책의 판본과 같은 흥미를 준다. 대부분의 아마츄어들은 여자의 발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거나 혹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데, 그것은 대부분의 독자들이 어떤 책이 초판본인지 10판째인지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카사노바가 여자를 책에 비유한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 싶다. 그럴만한 식견이 없기도 하다. 다만 한 사람의 인생을 책에 비유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애도 대신 세상의 가십거리로 남은 카사노바의 삶도 그렇게 가치있는 책은 아닌듯하다.


인생도 책으로 읽을 가치가 있는 삶을 살지 휴지로 쓰거나 불쏘시개 정도가 될지 선택의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문득 계절이 순식간에 바뀌는 걸 느낄때면 이런 마음이 더 절실해진다.

읽고 싶은 책으로 남길 가치가 있는 삶을 살지 아니면 바닥에 팽개치고 싶은 삶으로 살지 아침의 가을 바람이 내게 물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