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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Dec 07. 2023

고상한 불만

적당주의와 타협이라는 말이 혀끝을 맴돌 때 이 예술가를 떠올려본다. 거대한 대리석만을 껴안고 독신의 조각가로 살다 화가의 운명을 부여받았다. 불가능을 실현하라는 교황의 명령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화가는 4년가량 천장에 매달려 살다시피 하다 온갖 병을 얻었지만 아흔 가까이 장수하며 기념비적 작품을 남겼다. 이 예술사의 거인에 대한 평을 들어보자.  


미켈란젤로의 위대함은 고상한 불만에 있었다. 남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이다.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사람들, 베토벤/렘브란트. 고야/바흐처럼 미캘란젤로도 "완벽'이라는 말의 뜻을 알고 있던 거인이었다. 그리고 아득히 가나안의 땅을 바라보고 있던 모세처럼, 그럼 우리 인간이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것은 고상한 불만인 것이다. 그것은 참된 기혜의 시작일 뿐 아니라 모든 위대한 예술의 시작이자 끝이기도 하다.

     <예술의 역사>,  반 룬 지음 이철범 옮김, p.357  


<피에타>와 <다비드상>에서 <천지창조>로 나아간 힘은 결코 강압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반 룬의 말처럼 "고상한 불만"이라는 말이 잘 어울릴 듯하다. 연말의 시계 소리는 유난히 크고 속도도 빠르다. 우리 내면에서 요구하는 못 다 이룬 고상한 불만 덩어리가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해소할 궁리를 해봄직하다. 그것은 의무의 노예로 살다 적당주의와 타협하곤 하는 고약한 습성을 끊는 길이 아닐까. 비록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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