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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Nov 07. 2023

가을날


    가을의 노래

                   폴 베를렌


가을날
바이올린 가락

긴 흐느낌

하염없이

내 마음 쓰려라.


종소리

가슴 메여

나 창백히,

지난날 그리며

눈물 흘리네.


쇠잔한

내 신세

모진 바람 몰아치는 대로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낙엽 같아라.


프랑스의 시인 폴 베를렌(1844~1896)의 시 중에서 가장 유명한 ‘가을의 노래(Chanson d’automne)’다. 사랑하는 여인을 갑작스레 잃고 썼다고 한다. 그 쓸쓸한 마음을 가을날의 정서에 입혀 비애감이 가득한 리듬으로 표현했다.


이 시는 그가 스물세 살 때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썼는데, 그녀는 어릴 때 함께 자란 사촌 누나였다. <좁은 문>의 앙드레 지드가 연상된다. 금지된 사랑이었으므로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사연은 그녀가 다른 사람과 결혼했기에 더욱 비애감을 자극한다. 베를렌의 첫 시집 <우수시집(憂愁詩集)>의 출판 비용을 대 준 것도 사촌 누나인 그녀였지만 시집이 나온 다음 해 1867년 그녀는 산고 끝에 병을 얻어 31세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위대한 작품을 썼지만, 하늘은 '천재의 저주'를 내렸는지 그 재능에 비례해 그의 삶을 결코 행복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베를렌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으나 때로는 외골수적인 데다 고집불통이라 사고뭉치였다.


결혼 후에도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영화 <토털 이클립스>에 나오듯 시인 랭보와의 파멸적인 동성애로 가정 안팎의 지탄까지 받았다. 결국 랭보에게 총을 쏘는 비극으로 둘의 관계는 끝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에는 베를렌의 이 시를 비롯해 보들레르 등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의 작품을 85편이나 수록했다. 당시의 한자어를 섞은 번역 시 또한 색다른 묘미가 있다.


‘가을의 날/ 비오론의/ 느린 오열(嗚咽)의/ 단조(單調)로운/ 애닯음에/ 내 가슴 압하라.// 우는 종(鐘)소리에/ 가슴은 막키며/ 낫빗은 희멀금,/ 지나간 넷날은/ 눈압헤 떠돌아/ 아아 나는 우노라.// 설어라, 내 영(靈)은/ 모진 바람결에/ 흐터져 떠도는/ 여긔에 저긔에/ 갈 길도 몰으는/ 낙엽(落葉)이러라.’


배를렌의 애달픈 사연을 생각하다 어설픈 시구를 생각하게 되는 가을밤이다.



가을 단상

           

가을은 말한다.

당신의 빛나는 여름

반짝이는 지성,

결코 흔한 알코올이나

값싼 웃음과 바꾸지 말라고


덧없고 또 덧없는 삶이라지만

그래도 시처럼 

울림이 남는 삶을 살라고


이 가을 단풍이

 다 떨어지기도 전에

앙상해질 그대의 몸과

핏기 없는 피부를 상상하라고.


정경화 선생은 드물게 바이올린의 양대 명기, 괴르네리와 스트라디바리 두 악기를 다 써 본 경험을 얘기한 적이 있다. 찬란할 정도로 화려한 음색의 스트라디바리는 귀족의 품격을 지녔고, 괴르네리는 우직한 농부가 노동의 소중함을 느끼며 흘리는 땀방울 같다고 했던가.


어느 쪽이 더 울림이 클지는 모르지만 지나가는 가을을 붙잡고 싶은 지구별의 나그네에게 심야에 만났던

과르네리를 닮은 선율은 차라리 눈물 어린 절규였다.


(93) [정경화 KyungWha Chung] 바흐: 샤콘느 Bach: Chaconne from Partita No 2 in d minor, BWV1004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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