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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Nov 04. 2023

시를 생각하는 가을

단풍이 예년보다 곱지 않다고 한다. 기후가 나뭇잎의 변색 요인인데 늦더위가 단풍의 화려함을 시샘하는 모양이다.


전국 명산을 찾아 단풍철에 절경을 만끽하는 사람에 비하면 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축이지만 가까운 산에서 자연의 캔버스에 수놓은 단풍의 아름다움은 감상하고 싶다. 계절의 변화나 색색의 단풍을 보면 시심이 발동하는 건 각박한 삶에 지친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고 윤정희 배우가 배역을 맡은 미자 씨는 한적한 시골에서 시를 배우는 중년 여인으로 선생님의 습작시 과제물도 충실히 제출하는 학생이다.


미자 씨 외에 숙제 안 한 이들의 변명은 "시 쓰는 게 너무 어려워요"라는 투다. 이때 선생의 말은 "아니에요 시를 쓰겠다는 마음을 갖는 게 어려운 거예요"라고 한다.


수강생들처럼 시를 배운다고 하지만 내면에는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한가하게 그런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 마음과 사간을 내어줄 여유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도 파블로 네루다라는 대시인의 주변에서 시를 배우려는 시골 우편배달부가 나온다. 순박한 사나이가 사랑의 열병을 앓으며 시의 은유를 베우려 '메타포'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 시를 생각하는 너무나 순수함이 느껴지는 마음에 여인도 마음을 여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시인으로 잘 알려진 이해인 수녀는 투병을 통해 느낀 감상을 담담하게 쓴다. 평범한 언어지만 혹독한 병치레를 한 이의 간절하고 절실했던 일상에의 복귀가 대단한 축복으로 다가온다.


숨을 쉬는 것

걸어 다니는 것

밥을 먹는 것

극히 평범하게 했던 일들을

내가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의 선물로

놀라움으로 다가오네요


지천으로 보이는 단풍,  발에 밝혀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와 그 그윽한 냄새에 취해 걸음을 잠시 멈춘다면 시를 쓰겠다는 마음을 가진 게 아닐까.   


(91) 일 포스티노 OST(1994)고화질 • Il Postino ost • I Suoni dell'isola - Luis Bacalov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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