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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Jan 09. 2024

유리천장과 마에스트라

여성이 부딪히곤 했던 유리천장은 하나씩 깨어져나갔다. 


적어도 200여 년 전 과거에는 베토벤 모차르트에 버금가는 여성 음악가가 없다고 해서 누구도 그 현상에 의문을 달지 않았다. 모차르트의 누이 난네를은 피아노도 잘 치고 재능이 넘쳤지만 아버지 레오폴트는 딸에게는 볼프강처럼 유럽 투어를 통해 신동으로 프로 음악가로 데뷔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그녀 또한 숙명으로 여겼다. 


펠릭스 멘델스존의 누나 파니도 재능은 동생을 능가할 정도였지만 그저 아버지의 당부대로 나서지 않는 요조숙녀로 살아갔다. 몰래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고 유복한 가정에서 지인들을 초대해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수준으로 숨죽이며 살았던 것이다. 지금은 재능이 번쩍이는 그녀의 악보가 남아서 후세인들이 그 음악성을 기리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동생 펠릭스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      


요즘은 여성지휘자 마에스트라가 흔하진 않아도 아주 특별한 직업이란 인식은 덜하다. 안토니오 브리코라는 마에스트라를 다룬 영화 <컨덕터>는 유리천장에 부딪힌 한 여성 음악가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잘 담겨 있다.


영화에도 잠깐 언급되지만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의학자이만 음악에도 깊은 조예가 있어 바흐 평전을 집필할 정도였다. 슈바이처는 "예술가는 성공을 위해 기진맥진할 정도로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를 금언으로 신봉하는 안토니오 브리코는 남성들 사이를 돌진해 보지만 늘 암초에 부딪히고 자신의 한계를 실감한다. 


브리코는 밤무대의 피아니스트로 그럭저럭 살다가 어렵게 스승을 만나 장식 교습을 받고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장식한다. 이후 금녀의 벽, 베를린 필이라는 거함을 무난히 지휘했던 경력도 쌓았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싸늘하게 여성 지휘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하다. 이 마에스트라는 매일 색다른 벽에 부딪히지만 내면의 열정과 때마침 나타난 후원의 손길에 힘입어 뉴욕 여성오케스트라를 만들고 마침내 포디엄 위에서 지휘봉을 휘젓는다.


안토니오는 여성을 얕잡아 보는 뻣뻣한 단원을 애원하며 달래기보다 일침을 가하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의 스트라디바리를 낚아채며 자신의 악기는 오케스트라 전체라고 일갈하기도 한다. 하루 연습을 게을리하면 자신이 알고 이틀 째는 동료들이 알고,  사흘 째는 관객들이 안다는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유명한 얘기도 전한다.     

 

안토니오가 활약한 1920년대와는 달리 지금은 적어도 여성이라고 지휘의 문을 닫아놓거나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대는 아니다. 안토니오의 스승이 좌절한 안토니오를 달래며 전하는 메시지는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역경을 극복할 때에도 유효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예술가에게 가장 큰 도전은 실망을 이겨내는 것이다.


여성은 소프라노의 음성으로 사랑을 속삭일 수도 있지만 포디엄 위에서 거친 단원들을 다룰 수 있는 능력 또한 충분히 있다. 


Plàcido Domingo & Olga Peretyatko ⭐ ♫ Lippen schweigen/von F.Lehár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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