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림 Jan 06. 2024

텍스트와 해석

하나의 텍스트가 되어 울림을 주는 삶은 영화로 또 소설로 지속적으로 콘텐츠가 되어 소비되고 있다. 이순신과 나폴레옹 같은 영웅이 그렇고 베토벤, 반 고흐 같은 예술가들의 삶이 그렇다.


픽션이 가미된 해석은 때로 영웅 신화에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더하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도 서가에서 소설 속 인물로 긴 잠을 자고 있었다면 영화로 뮤지컬로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나 소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텍스트는 언제나 그 원본을 새롭게 만든 많은 이들의 손길이 스며들어  발견되고 해석되어 의미를 더한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은 의례히 파블로 카잘스와 같이 연상된다. 13세 소년이 아버지 손에 이끌려 스페인의 어느 고서적상에서 먼지 붇은 바흐의 악보라는 잠자는 텍스트를 깨워냈다. 이 텍스트에 숨결을 불어넣는 데에는 거의 20년 가까운 연습과 곡해석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런 경우는 텍스트를 같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간에도 겨울잠을 자는 무명의 텍스트가  새로운 시각의 해석과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 무반주 첼로모음곡은 소년과 소녀들의 연습곡으로 또 무대에서 프로 연주자들이 악보에 숨결을 불어넣으며 연주하고 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슬픈 일에 연주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첼로라는 악기의 어둡고 서글픈 음색과 더불어 이 곡이 외롭게 하나의 악기만 요구한다는 사실로 대부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첼로는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닮은 악기라서 암울한 소리만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장조로 쓰인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경쾌하고 떠들썩하게 웃고 즐기는 태평한 태도와 황홀한 유희 역시 어느 정도 들어가 있다. 그 뿌리는 춤이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찾아서>  정지현 지음, p. 19


무반주첼로 모음곡 '부레' 선율에 어깨를 가볍게 들썩거리거나 주변 지인들의 따스한 유머에 귀를 맡겨 춥고 어두운 겨울을 이기는 건 어떨까.


[트레첸토 스테이지] 바흐 첼로 모음곡 3번 '부레' (youtube.com)

작가의 이전글 예술과 잔재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