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를 바라보며

잔인한 운명을 탓하지 않고 사랑을 보았던 노인

by 호림


열두 살에 아빠를 잃고 5년 뒤에는

엄마도 세상을 떠났다.

온갖 잡일을 하면서

고학으로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은 후

사랑하는 아내를 만났고 여섯 아이를 낳았다.


첫째는 여덟에 콜레라로 죽었고 둘째는 자살했다.

다른 두 아이도 잃었다.

이렇게 네 아이를 먼저 보내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죽음을 앞에 두었을 때 시인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그마저도 시인의 곁에는 딸 하나만 있었고,

딸 하나는 정신병원에 있었다.

그래도 노인은 이 세상을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이라고 했다.

그의 시에서.


로버트 프로스트는

교과서에 나오는 시 <가지 않은 길>로

우리에게 알려진 시인이자

미국에서는 국민시인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시 자작나무(birches)라는 시는

제법 긴 시인데 심금을 울리는 시구가 있다.


세상은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

이보다 더 좋은 곳을 나는 알지 못한다.

Earth is the right place for love.

I don't know where it's likely to go better.


언어의 예술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법한 시인,

고통도 삶의 한 부분으로 기꺼이 껴안았던 시인을

생각하며 자작나무를 한동안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글을 다듬고 쓰는 솜씨 마냥

그의 흔들리지 않았던 삶도 예술이었다.


자작나무 껍질은 흰색이고 종이처럼 벗겨진다.

강해 보이는 삶도 실은 종이처럼 잘 벗겨진다.

그렇지만 그 연한 피부를 안고 살아가는 자작나무처럼

우리는 또 하얀 피부를 지키며 살아갈 것이다.

문득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얘기했던 친구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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