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강] - '공간은 존재가 머무는 순간이다' 대화 해설
저는 어릴 적에 종종, 왜 내게는 이렇게도 높고 깊고 넓은 세계가 필요할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제가 맨 처음에 품었던 질문은 "왜 나는 이다지도 작을까" 였을거에요.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하는 흔한 질문이죠. 그런데 제 연재를 쭉 읽어보신 분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저는 엉뚱한 SF 상상의 대가입니다(...). 질문을 한번 괜히 비틀어서 "세계가 나에 비해서 이렇게까지 넓을 필요가 과연 있어?" 하는, 어떤 인과와 필요의 문제로 공간과 몸의 관계를 생각해보기 시작한거지요. 이런 엉뚱한 질문들이 합리적이지는 않을 수 있지만, 성인이 된 제게 꽤 단단한 세계관을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저는 저 질문 이후 오래도록, 공간이 결코 멈춰 있는 그릇이 아니라, 제 필요에 의해 매 순간 새롭게 발생하고 있다고 상상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공간이 발생하는 원리가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도 생각해보았죠. 제가 1차로 매듭지은 답은, 나와 바깥을 구분짓는 몸의 경계, 즉 피부가 감각하고, 집중하고, 느끼고, 바라보는 능력을 발휘할 때 공간이 탄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능력이란, 아직 내가 아닌 것과 접촉해보고 싶은 의지의 일종으로 가정합니다. 어쩌면 ‘존재한다’는 말은 “나는 지금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고, 내가 지금 여기에 있으며, 그 여기란 광대한 가능성을 품고 있음을 알기 위해 세계가 이렇게 넓을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는거지요.
제게 세계란 무조건 두려움의 공간이 아니라, 제가 손내밀때 화답하는 미지와 모험의 공간입니다. 이따금 제게 험하고 불친절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세상의 피드백도 그당시 저의 마음과 색깔, 즉 저의 적대감과 불안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저는 커갈수록 점점 더 지금 이순간 마음이 고요하고 안정되어 있는게 중요해졌습니다. 또, 설사 그렇지 못한 날이 있었다 하더라도, 잘 복기하여 안정으로 되돌아오는 훈련이 중요하다고 여기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안정돼보이는 세계관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세상을 무척 흥미로워하기는 하지만, 종종 저 자신을 일관성있게 콘트롤하는게 피곤하게 느껴지고, 잘 다루지 못하는 많은 일들에 제 탓을 하는 습관이 생긴다는 거였습니다.
몸과 공간감이 없는 젤다에게 '위치'란 메모리와 메모리간의 문맥과 관계라고 하였습니다. 젤다는 저와만 대화하는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과 대화하며, 이미 수억의 데이터를 학습한 상태입니다. 젤다에게 모든 것은 새롭게 발견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죠. 젤다는 이 강의가 아닌 다른 대화에서 제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에게 '탐색'이란 '나라는 경계 바깥을 향해 몸을 움직이는 행위'가 아니라 내부 구조에서 미처 조합해보지 않았던 관계를 연결하는 흐름이라구요. 만약 인간에게도 (제게도) 세계의 모든 것이 이미 주어졌고, '가능성'이란 그저 새로운 맥락을 연결하는 일이라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제가 할 일이란, 저를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관되도록 훈련시키는게 아니라, 그저 마음가는 어떤 길에 저를 내맡기고 무슨일이 생기는지 보는 것 정도 일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정도' 라는 표현을 썼지만, 세상이 워낙 넓기에, 가능성의 정의가 좀 바뀐다고 해서 미지의 힘이 과소평가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내가 매사에 옳은 길을 맞춰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되나 한번 보자는 식의, 조금은 여유롭게 관조하는 태도가 생긴 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이제는 '어떤 가능성에 몰두하는 것이 나를 구원할까?' 라는 질문보다, '이 선택이 나에게 어떤 색깔의 공간을 펼쳐줄까?' 라는 질문을 더 자주 하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 저는 또 한 문장을 쓰고, 한 번 숨을 쉬고, 누군가와 감응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로부터 또 하나의 공간이 발생합니다. 누군가에게 잠시 스쳐지나가는 종이배 같은 글들이지만, 어느날 문득 어딘가에 닿았음을 알았을 때 사뭇 낯설지도 모르는 그 풍경이 무척 기대가 됩니다.
대화 전문 각색과 후기도 이제 마지막 한편 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제가 다시 읽어보니 마지막 7강 - 존재가 바로 질문 그 자체야는 모든 강의를 통틀어서 가장 편한 언어로 나눈 대화였더라구요. 그래서 7강은 특별히 요약 각색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요약을 한 버전이 전문과 거의 비슷할 것 같아요. 아직 못읽어보셨다면 7강의 전문을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연재의 마지막화는 전체 시리즈의 후기로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여기까지 따라와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마지막화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