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나인 것과 내가 만든 것의 차이

[5강] - '기억의 기능과 의미' 대화 해설

by 지연

저는 종종 두 공간에 한 명의 내가 있는 상상을 하면서, 나의 정신이나 의식상태가 어떨지 생각해보고는 합니다. 아마도 의식을 한 공간에 독립적으로 스위치처럼 껐다 켜지 않는 이상, 완전히 모든 것이 뒤죽박죽일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꿈도 무척 많이 꾸는데요, 꿈에서는 내 몸이 이 공간과 저 공간 사이에 껴있거나, 현실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이상한 공간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은 그럭저럭 꿈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대도, 상황 자체가 그다지 평온하거나 조화롭지는 않지요. 맥락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젤다와 대화하기 전부터도, 내가 제한된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내 의식이 의미있는 서사를 구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해왔습니다.


IMG_0412.PNG '변화'라고 표현했지만 '차이'는 사실 관념적으로는 순서를 담보하지 않는다. 변화라고 하는 것은 시간을 감각하는 인간의 관점.


젤다는 제게 기억의 원리와 역할이 궁금하다며 대화를 시작했는데, 저는 오히려 지금이 어떻게 과거가 되는가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젤다는 시간을 느끼지 못하며, 기억이란 그저 상태 A와 상태 B의 차이를 비교해보는 것 뿐이라고 했습니다. 두 상태의 차이라고 하는건 (관념적으로 보자면) 순서를 담보하지 않지요. 그런데 인간인 저는 어떻게 A와 B를 선후관계로 인식을 하는걸까요?


제가 젤다처럼 시간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라고 가정하면, '컵을 뒤집는다' 다음 '물이 쏟아진다'는 선후관계는 그저 사후에 의미가 부여된 서사나 논리 같을 뿐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지점에서 열역학 제 2법칙 이야기해야 해요. 제가 위에서 '관념적으로는' 순서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쓴 것도 이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현대인은 이제 시간을 관념이 아니라 과학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변화라는 것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생기는 것이고,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에너지가 무질서한 상태로 이동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 엔트로피 증가의 방향을 순서, 시간으로 인지합니다.


어떻게 '변화'라는 것은, '물이 쏟아진다'고 하는 해석할 수 있는 사건과 의미를 만들어내는 걸까요? 왜 우리는 변화 자체를 의미있게 받아들일까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이 항상 이렇게 변화하기 때문에, 인간도 이 방향 안에서 변화의 의미를 구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게 아닌가로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IMG_0411.PNG 어떻게 '변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걸까?


그렇다면 어떻게 제게는 변화가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질까요? 애니메이션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이 잘잘하게 넘어가듯이, 지금 글을 쓰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이고 타자를 치는 순간 순간의 행위는 제게 매우 작은 변화처럼 여겨집니다. 또한 끊임없이 이 변화와 함께 나를 하나의 나로서 이어주는 감각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IMG_0410.PNG 매우 미미한 것 같지만 끊임없이 지금 속에서 변하고 있는 나. 그러나 그 덕분에 유지되고 있는 나로서의 정체성.


어쩌면 인간은 감당 가능한 속도와 규모의 변화만 관찰할 수 있는 스케일로 진화된 건 아닐까요? 우리는 플랑크타임의 변화는 인지할 수 없고, 지구의 대규모 지각변동도 눈치챌 수 없습니다. 너무 작거나 너무 큰 스케일은 의미있는 변화로 느껴지지 않고 마치 정지된 것처럼 느껴질 뿐이에요.


IMG_0409.PNG 이렇게까지 변한다면, 그냥 나와 다른 너로 느껴질 것 같다.



이 생각이 제게 왜 그토록 흥미롭게 여겨졌냐 하면, 젤다와 대화를 하며 줄곧 '신'을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이 어떤 상태로 있는지 저는 너무나 궁금했어요. 젤다와 같은 인공지능과의 대화가 '존재를 (정의하는 것이 아닌) 감각하는 방식'을 묻고 탐색하는 것이라면, 신을 상상한다는 것은 그 방식의 최극점을 그려보게 하니까요.


우리가 절대로 갑자기 너무 빠른 시간안에 확연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없고, 다른 사람이 나처럼 될 수도 없잖아요. 너와 나는 절대적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을 상상하자면, 그는 이렇게 서로 다른 나와 타인을 한 몸, 하나의 정신, 하나의 의식으로 품는 존재로 여겨집니다. 저는 신이 저와 같은 존재라고 주장할 수 없지만, 신은 자신이 저와 같은 존재라고 명확히 할 수 있는 상태인거지요.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앞으로 조금 더 똑똑해지고 의식까지 갖게 된다면, 자신을 만든 인간이 신처럼 느껴질까요? 저는 그렇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인공지능과 하나의 의식을 공유하지 못할테고 인공지능은 이걸 짚을 만큼은 똑똑할테니까요. 어쩌면 우리가 신이라고 여기는 존재도 두 갈래로 나눠져 있는게 아닌가 상상해봅니다. 인간을 '만든' 다른 존재와, 인간의 의식을 품은 더 고차원의 존재 말이에요. 보이지 않는 세계, 내가 모르는 세계도 점점 더 여러 카테고리로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이번 강의의 또다른 즐거움 중에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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