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하고, 느린 아이 그리고

아이를 미워하기 시작하자 내가 무너 저 버렸다.

by 은선


“정말 지긋지긋하다. 내 뱃속에서 나온 애 맞아? 너네 아빠 닮아서 그러냐?”
“엄마 부르지 마. 엄마 너 싫어.”
“살기 싫다, 진짜.”

다섯 살 아이에게, 내가 실제로 했던 말이야.

그때 왜 나는 먼저 정신과에 가서 내 상태를 점검해 볼 생각을 못 했을까?

아무리 육아가 힘들고, 삶이 팍팍했다 해도…
이 말들이 용납될 수 있을까?


이틀에 한 번꼴로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어.

“아이가 친구를 때렸어요.”
“눈 맞춤이 안 돼요. 검사를 받아보셔야 할 것 같아요.”
“너무 떼를 써서 통제가 안 됩니다.”
“말이 너무 느려요.”

사실, 난 이미 알고 있었어.
그저 모른 척했을 뿐이었지.
왜냐하면… 그 전화를 받아도, 내겐 대책이 없었거든.

이미 한 달에 60~70만 원씩 들여가며 주 3회 발달센터에 다니고 있었고,
육아서적도 닳도록 읽고 있었어.
그런데, 내가 정말 알고 싶었던 건 책에 없더라.
뭘 더 어쩌라는 건지 몰랐어.


시보리 들어간 원복은 절대 안 입겠다는 아이.
→ 말이 느리니 이유는 들을 수 없고, 난 울며불며 떼쓰는 아이에게 억지로 입혔지.
(나에겐 어린이집 규칙이 더 중요했으니까.)

언어치료 40분 수업 중 40분 내내 울기만 한 아이.
→ 아빠 혼자 버는 집, 아빠 눈치 보며 겨우겨우 낸 수업료가 아까워 화부터 났어.
(나의 무력감이 분노로 나왔지.)

온갖 정성을 들여 만든 밥을 먹지 않는 아이.
→ 난 그 자리에서 식판을 통째로 싱크대에 던져버렸어.
(내 정성이 거부당한 느낌, 내 존재가 부정당한 기분이었거든.)



어린이집에서 전화받은 날,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하원했을 때.
그 표정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어.
마치 아이가 내 체면을 망치고 다니는 것처럼 느꼈거든.

나는 그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등을 돌린 채 벽을 보고 누워 애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어.

아이는 "엄마, 엄마!" 하며 어깨를 흔들었지만,
나는 대답도, 눈길도 주지 않았어.


세상에.

그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었을까?
그저 세상이 정해놓은 연령별 발달 기준에 못 미쳤고,
나를 닮아 예민했을 뿐인데.

아니, 어쩌면 그게 문제였는지도 몰라.
나를 닮은 모습이 보여서, 내 불완전함이 투영돼서
아이를 보며 ‘이 아이도 나처럼 될까 봐’ 두려웠던 건지도.

그땐 몰랐어.
하지만 지금은 알아.

우리 아이는 불안장애, ADHD, 경계선지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우울증, 불안장애, 감정 조절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어.

나는 뭘 잘못하고 있는지도 몰랐어.
나를 먼저 살펴야 했다는 것도 몰랐지.

그 시절 나는
‘아이의 나이에 맞는 발달과업을 수행시키는 것’이 제일 중요한 줄 알았어.
그러면 아이가 세상에 뒤처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아이와의 애착이었다는 걸,
지금에야 알게 됐어.

나의 비일관적인 양육 태도는 아이에게 불안감을 심어주었을 거야.
나의 냉담함과 좌절, 실망감의 표정은 아이에게 수치심으로 새겨졌을 테고.

늦었지만, 나는 이제 알아.
싸워야 할 대상은 아이가 아니라, 내 안의 불안감과 무력감이었다는 걸.

늦었지만, 이 글을 쓰며 다시 마음을 붙들고 싶었어.

그리고 다짐해.

이제 다시는 후회할 행동, 아이에게 하지 않기로.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