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다는 느낌이 이런 거군
그 작은 아이가 탯줄을 단 채로 내 가슴에 얹혔던 순간을 떠올린다.
손가락이 열 개가 맞나,
발가락이 열 개가 맞나,
그거면 됐다.
내 젖을 잘 빨아먹기만 하면 좋겠고, 감기에만 안 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찌 됐든 늦더라도 두 발로만 걸어주면 됐다.
그 단순하고 절실했던 바람이, 어느새 욕심이 되어버렸다.
아이가 친구에게 관심을 가져줬으면,
색종이를 귀퉁이에 맞게 접었으면,
다른 아이들처럼 한글도 제때 떼면 좋겠다고 바랐다.
저 집 아이처럼 야무지게 행동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내 욕심이 화를 부른 걸까.
아니면 어디서부터 뭔가 잘못된 걸까.
처음엔 인정하기 어려웠다.
그저 느릴 뿐이라고 믿고 싶었다.
어린이집에서 부정적인 피드백이 들어올 때마다
애써 듣지 않는 척, 모른 척 넘겼다.
여섯 살이 되던 해, 아이는 병설유치원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선생님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진지한 얼굴로 하나하나, 아이의 서툰 부분과 부족한 점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셨다.
그 순간, 나는 마치 돌아가는 회전판에 대자로 묶여
선생님이 던지는 칼을 맞고 있는 기분이었다.
서커스와 달랐던 건, 그 칼이 모두 나를 정확히 맞춘다는 점이었다.
나는 공감 잘하고 경청도 잘하는 사람이었지만
그 순간엔 그저 아이의 ‘결함 목록’을 듣는 죄인처럼 앉아 있었다.
선생님은 청중을 얻은 듯 신이 나서
더 많은 단점과 부족함을 열거해 갔다.
이야기의 끝에서, 선생님은 말했다.
“특수교육대상자로 신청해서, 다른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특수학급으로 보내는 게 어떨까요?”
그동안 내가 외면했던 모든 피드백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차곡차곡 모은 말들이 한 권의 책처럼 쌓여
내게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아니, 마치 백과사전으로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많이 울었다.
집에 도착한 이후부터는
그 눈물을 짜증으로 바꿔 아이에게 쏟아냈다.
유치원에서 지적된 부분을 모두 체크하고
하나하나 교육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원을 검색했다.
검사 가능한 곳들을 찾고, 예약을 걸었다.
시에서 운영하는 장애인복지관에도 등록했고,
교육청을 통해 특수교육대상자 신청도 해두었다.
대부분 예약은 짧으면 한 달, 길게는 1년.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나는 죄수처럼 살았다.
죄목은 두 가지였다.
나쁜 유전자를 물려준 죄, 잘못된 양육을 한 죄.
그렇게 따지자면, 피해자인 아이에게 사죄해야 마땅했지만 나는 오히려 아이를 모든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돌렸다.
작은 잘못에도 쉽게 화를 냈다.
안 입겠다는 옷을 억지로 입혔고,
안 먹겠다는 음식도 꾸역꾸역 먹였다.
친구들과 놀라고 억지로 놀이터를 돌았지만
돌아오는 건 비교에서 오는 비참함뿐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버티고 기다리다 드디어 연락이 왔다.
특수교육청과 시 장애인복지관에서 검사 날짜가 잡혔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또 나를 불렀다.
“비 오는 날, 아이가 비를 맞으면서 막 혼자 웃더라고요. 다른 애들은 안 그러거든요. 이상했어요”
라며 애를 미친 아이 취급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심장은 쿵 내려앉았다.
나는 그날 아이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손바닥을 활짝 펴고 하늘을 향해 내밀며,
우산도 없이 빗방울을 맞던 아이.
웅덩이에 신발을 담그고 퐁당거리던 아이.
세상 어떤 장난감보다 좋아했고,
세상 어떤 표정보다 생기 있었다.
그 모습을 나는 ‘순수함’이라 생각했다.
감각이 살아 있는 아이, 자연과 교감하는 아이,
그러나 선생님은 그걸 ‘이상함’이라고 불렀다.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의 낭만을 지켜주기엔, 내 안의 두려움이 너무 컸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돌아섰다.
마음속에선 조용히 사죄해 본다.
미안해.
그날의 너를 지켜주지 못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