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이 되던 해부터 아이는 유독 집착하는 것이 생겼다.
바로 침대 위 이불 정리이다.
정확히 말하면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이 침대 위에 반듯하게 딱 반으로 접혀 침대 각에 맞게 정리되어 있기를 바랐다.
처음엔 그냥 더러워 보여서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싱크대의 설거지통이나 너저분한 거실은 말 한마디 없다.
오직 침대 위 이불만, 매일 아침 루틴처럼 정리되길 원했다.
처음엔 고민하지 않았다.
내 나름대로 이유를 지레짐작했고, 무엇보다 감정 소모가 싫어서 웬만하면 내가 해주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사람이 매일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는 일은 당연히 조금씩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말했다.
“앞으로는 네가 해. 네가 원하는 거잖아.”
아이는 알겠다고 했다.
스스로 해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정리한 이불은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퀸사이즈 침대에 놓인 커다란 이불.
경력 3n 년 차의 손끝 정리력은 당연히 나올 수 없었다.
결국 아이는 자기가 접은 이불을 보고 화를 냈다.
“내가 하면 예쁘게 안 돼!”
“그럼 자꾸 해봐야 늘지. 엄마 바빠죽겠는데 아침마다 이불 정리해 달라고 난리야.”
나는 짜증을 냈고 아이는 모진 말을 들어도
다음 날 또, 그다음 날도 이불 정리를 요청했다.
어떤 날은 일찍 일어나 내가 해주기도 했고,
바쁠 땐 못 해주기도 했고,
기분 좋을 땐 같이 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아이는 왜 이렇게까지 이불 정리에 집착할까?’
조심스레 물었고, 아이는 짧고도 명확하게 말했다.
“마음이 불안하니까. 정리하면 조금 괜찮아.”
불안한 기질을 타고난 아이.
ADHD와 경계선 지능이라는 이름 속에서 살아내고 있는 아이.
그 아이에게 이불 정리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다시 세우는 작은 의식이었다.
아이에게 세상은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하다.
학교에 가야 한다는 부담감과 불안은 잠에서 깬 순간 아이를 덮쳐온다.
그 불안 앞에서 아이에게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은 침대 위 이불 한 장이었다.
“이불이 제대로 있어야 하루가 잘 시작된다”는 느낌.
그건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작은 정돈으로라도 잠재우려는 몸부림이었다.
학교에 다녀온 후 감각의 폭풍을 정돈된 이불 위에서 안정시키고 싶은 마음.
청각, 촉각, 시각 모든 감각에 예민한 아이는
그나마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시각적 안정을 이불에서 찾고 있었다.
공용으로 쓰는 거실, 화장실은 지저분해도 참는다.
설거지가 쌓인 싱크대는 불편하지만 자신이 손댈 수 없는 영역이기에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먹은 그릇을 설거지통에 넣는 것조차 싫어했다.)
하지만 오직 자신만 사용하는 침대만은 정돈되어 있어야 했다.
그곳만큼은, 자신이 안정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안정’에 대한 집착은 예측 가능한 루틴으로 이어진다.
아침에 이불 정리
식사
약 먹기
등교
하교
화장실 가기
잠옷 갈아입기
쉬기
이 순서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하루가 무너지지 않는다.
루틴 사이에 단 하나라도 낯선 일정이 끼어들면 아이의 마음은 금세 요동친다.
심할 땐 하루 전부터 압박을 느끼고 몇 시간 동안 그 일정을 걱정하며 불안해한다.
아이는 불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워한다.
대신 엄마에게 무언가를 반복해서 요청함으로써
‘엄마가 나를 신경 써주고 있구나’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한 것보다 내가 정리한 이불이 훨씬 더 반듯하고 안정감 있다.
나는 그동안 아침마다 반복되는 투정과 소동을 그저 ‘귀찮은 일’쯤으로 넘겼었다.
하지만 이제 안다.
그 사소해 보였던 요구와 몸짓들 안에 아이의 불안한 세계가 숨어 있었다는 것.
아이를 바꾸려 하기보다, 조금 더 유연해지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이불을 정리해야 불안한 마음이 안정된다면, 그렇게 하자.”
“오늘 걱정되는 일이 있다면 엄마한테 얘기해 줘.”
무조건 내가 다 해버리기보단, 기분이 괜찮아 보이는 날에는 함께 정리해 보자고 제안한다.
전날 밤에 이불 정리에 대해 미리 이야기하고 자는 것도 효과적이다.
이불이 조금 삐뚤어져 있어도, 정리하지 않고 나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려준다.
조금씩 자라나는 강박 성향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과정이다.
“이불 정리를 못 했을 땐 어떤 기분이 들어?”
“엄마한테 너의 마음을 조금만 더 말해줄래?”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잡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작은 버팀목들을 조금 더 유연하고 다양하게 바꿔줄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