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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리버 리 Feb 25. 2024

고등어시금치라면

냉장고에 겨울 무(부산에선 무시, 무우라 했다), 그가 준 고춧가루가 한 봉지 있어서 고등어무시찜 해 먹으려고 노르웨이산 냉동 고등어를 샀다. 마침 할인까지!(할인 금액이 실제 금액인데 구매욕구 자극하기 위해 값을 미리 올려두는 게 아닌가 싶다)


마늘 왕창, 대파, 생강, 고춧가루 엄청에 큼직하니 무시 썰어 넣고, 고등어 올려서 졸이듯 끓인 후 간장 조금 넣고 다시 끓인다. 후다닥 만든 고등어무시찜은 충분히 만족스러웠지만 그렇다고 매번 먹을 순 없다.


라면은 2020년 이전엔 한 달에 한두 번 먹은 듯한데 택배족이 된 후 일주일에 한두 번 이상으로 먹는다. 나이 들수록 밀가루를 피하라는데, 냉장고에 있는 무엇이든 첨가(만두, 어묵, 김, 상추 등) 하면 다른 맛을 낼 수 있어 간편하고, 가격 대비 배부름 최강이니 자주 먹을 수밖에. 마침 면을 좋아하고!(자주 먹어서 중독인데 좋아한다 착각하나?)


라면 끓이려다 고등어 넣으면 어떨까? 예전에 본 일본 다큐에서 밥 할 때 생선을 넣던데(고등어는 아니었지만), 슬기 외가에서 생선 들어간 김치 보고 기겁했지만 먹어보니 맛있었고, 아직 먹어보진 않았지만 고등어 케밥도 있다는데, 할까 말까 싶을 땐 하지 말라지만 해보지 않으면 제대로 알 수 없다. 몇 번을 해도 라면물을 못 맞추는 똥손도 있지만 라면 봉지에 적힌 레시피대로 하면 딱 그 맛이다. 이미 알려진 조리법과 익숙한 재료의 조합으로 다른 맛을 기대할 수 없다. 음식을 만드는 건 창조적인 일이고 상상력이 있어야 하지만 상상만으론 맛을 낼 수 없으니 직접 해봐야 한다. 미각을 잃었지만 맛의 조합을 상상해서 음식을 만든, 장금이처럼!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떠다니는 비닐봉지가 자신이 파도를 즐기는 줄 착각하듯, 가이드가 외워서 읊어대는 낭설이 자신의 감정인 줄 착각하는 패키지여행처럼, 상대방의 요구를 자신의 생각인 줄 착각하는 인간관계처럼 백종원과 어남선생 레시피를 따라 해서 만든 똑같은 맛을 자신이 만든 맛인양 뿌듯해한다.


팔도 해물라면 수프에 마늘과 대파, 생강, 고춧가루 팍팍 넣고 물 끓으면 고등어와 라면을 넣고, 혹시라도 느끼할까 봐 시금치 듬뿍, 다시 끓인다. 느끼해서 라면에 참치 넣는 것도 안 좋아하는데, 고등어 첨가했을 뿐인데 일본 어느 소도시에서 우연찮게 들어간 식당에서 맛있는 정식을 먹은듯한 착각도 들고, 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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