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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리버 리 Feb 24. 2024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2024년 2월 17일(토, 맑음)

집-강서도서관-브라이트 베이커리-(김해와 밀양을 연결하는 지방도로)-영남루-(둔치도)-집


-강서도서관

1.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송경동, 창비)

시퍼렇게 날 선 낫과 같은 시를 썼던 김남주가 있었고, 노동해방을 필명으로 썼던 박노해가 사진작가가 된 시대에 여전히 몸으로 시를 쓰는, 노동하는 시인이 궁금했다


2. 잭 리처 61시간(리 차일드, 오픈하우스)

방송국에서 18년 일하다 구조조정으로 해고당해 글을 써서 대박, 1997년부터 매년 한 편씩 쓴 게 계속 대박. 마석도의 원형이 궁금했다


-브라이트 베이커리

어쩌다 보니 오도방 파트너와 라이딩 전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석박사가 즐비한 가방끈 긴 사무직 노동자들이 있는 직장이나 듣보잡 지방 사립대 나온 것도 의외라는 듯 묻는 가방끈 짧은 택배 노동자들이 있는 곳이나 직장 생존방식과 사고 수준은 별 차이 없고, 노동자 의식 없긴 매한가지다.


올드오크 같은 공간을 가진다는 것, 내 주변과 즐겁게 같이 할 수 있는, 소소하지만 재미난 무엇(구체성은 없어도 이것저것)에 대해 1층 창가 지정석(앉다 보니 계속 같은 자리)에서 1시간 반 정도 수다를 떨었다. 아직은 대화 소재가 고갈되지 않고 있다.


-시장분식

설탕을 듬뿍 넣은 맵고 달달한 자극적인 양념이지만 비빔칼국수 면발이 탱글탱글해서 한 번씩 먹으면 맛있다. 같이 나오는 선짓국의 조합이 괜찮다. 선지국밥을 먹은 파트너는 여기도 괜찮은데, 용호동 동명정보대 앞 선지국밥집이 최고였다니 다음에 가봐야겠다.


-밀양(이창동)

"여기 밀양은 한나라당이고 경기가 엉망이고, 부산과 가까워 말씨도 부산 말씨고, 인구는 뭐 마이 줄었고..."-김종찬(송강호 분)


"어떻게 용서를 해요? 용서하고 싶어도 난 할 수가 없어요. 그 인간은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데...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데...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그 인간을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이신애(전도연 분)


피해자의 동의 없이(혹은 용서하기 전에) 가해자가 죄를 깨닫고 스스로 용서받는 게 가능할까, 설혹 신이 있다면 신은 그래도 되는 걸까, 그럴 수 있을까 한동안 생각거리였다.  


밀양 하면 자연스레 위양못이 떠오른다. 백화점 사진교실 출사 이후 그와 몇 번 갔는데 압도적이지 않은 적당한 연못 크기에 이팝나무 꽃이 활짝 피어도 유난스럽지 않고, 당시엔 출입이 안 되던 완재정의 고즈넉함이 좋았다. 그때의 그는 연못가의 붓꽃처럼 화사하게 아름다웠고, 그와 나눴던 사랑은 동지섣달 꽃 본 듯이 좋았다.


몇 년 전 다시 찾은 위양못은 관광지 개발사업으로 연못 바로 앞까지 차량 통행이 용이하게 도로가 들어섰고 드넓은 주차장까지 갖추고, 마치 놀이공원처럼 사람들로 북적대며 자멸하는 관광지의 전형을 밟고 있었다. 에구~ 더 이상 찾을 일 없는 공간으로 변해버린 게 아쉬웠다.


김해에서 밀양으로 가는 지방도로는 도로가 넓고 교통량이 많지 않아서 오도방족이 봄이 오길 기다리는 코스일 듯. 80km를 넘으면 핸들이 떨리는 파슈수와 굉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야 80km를 달리는 중고 데이스타를 타고 가는 맞은편 도로로 쓩카(엄청 빠르게 쓩하고 달리는 비싼 오토바이) 3대가 쓩~ 지나며 손을 흔든다. 라이더 인사법인걸 알아채고 손을 들었을 땐 이미 그들은 지나갔다. 점점 밀양이 가까워질수록 나도 모르게 계속 흥얼댄다. 이젠 더 이상 나를 보지 않는 님 생각에,


-밀양 아리랑

1.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2.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 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후렴)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영남루

영남루라는 현판 글자를 일곱여들 살 정도의 아이가 적었다는데, 그의 서예 실력이 대단했다는 언급이 없는 걸 보니 당대의 권력자의 자제라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봉건왕조시대나 21세기 민주공화국이나 애비 권력과 돈이면 아들이 호사를 누리는 건 변함없이 여전하다.


영남루에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는데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든다. 그러고 보니 지형도 그렇고 누각(영남루-촉석루), 성(밀양읍성-진주성), 인물(논개-아랑), 영화 <밀양> 대사처럼 한나라당, 경기가 엉망이고, 인구가 마이 줄었고…  그와 손잡고 같이 걸었던 진주와 비슷하게 닮았다.


돌아오는 길 둔치도 강변에 매화꽃이 피었다. 겨울이 가면 어김없이 봄은 온다. 봄이 오면 그를 볼 수 있을까, 나를 나답게,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 줬던 그 사람이 보고 싶다. 봄은 볼 수 있어서 봄이라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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