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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리버 리 Feb 18. 2024

무시할 수 없어서 무례하다

2024년 2월 9일(금, 약간 흐림)

집-(구덕운동장)-망양로-서면 알라딘 중고서점-서면시장 경주박가국밥-(아파트 주차장)-(부산역)-집


지난번에 엄마에게 책 얘기한 것도 있고, 오랜만에 서점 구경도 하자 싶어 파슈수 타고 쓩~


대신동에서 시작해 영주동, 초량동, 수정동, 범일동 까지 이어지는 구불구불 산복도로를 택했다. 30여년 전과 별 다르지 않는 다닥다닥 붙은 집들, 옥상 주차장, 짙은 파란색 물통은 여전하고 부산항 앞바다 전망 역시 그대론데 중간중간 들어선 아파트들이 시야를 가린다.


오션뷰를 광고하는 초고층 아파트는 최소 몇 억씩하는 집값에 살려는 사람이 줄을 서지만, 땅값이 싼 산 중턱에 지은 10평도 안되는 무허가 주택은 영구 오션뷰를 가졌지만 사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빈 집이 늘고 있다.


도로명만 들어도 택배족의 몸이 움찔 반응하는, 배송가기 싫은 길, 망양로가 산복도로다.


대중교통으로 부산의 또 다른 면을 보고 싶다면 86번 버스가 제격이다. 서면-산복도로(범일동, 수정동, 초량동, 영주동)-국제시장-부산데파트-남포동-자갈치시장을 운행한다.


#아버지의_해방일지 큰 글자 책을 구하려고 중고서점 갔는데 없다. 새책을 사거나 도서관에서 빌리는 수 밖에. 이제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인데, 출판사는 왜 큰 글자책 출판을 확대하지 않을까? 그나마 책을 읽는 건 텍스트에 익숙한 세대일 텐데, 큰 글자면 책값이 비싸져서 안살까봐 그럴까?


-경주박가국밥

부산 어디나 처럼 서면시장에도 돼지국밥집이 몇 군데 있다. 부산에서 돼지국밥은 소울푸드라 각자의 입맛에 맞는 집이 있는거지, 절대 지존은 있을 수 없다. 이 집이 최고, 무슨 무슨 3대 천왕 따위의 호칭은 동네 사람끼리 한 다리 건너면 다아는 규모여야 가능하지 인구 4백만이 넘는 대도시에선 그냥 헛소리일 뿐이다.


나에겐 30년 전부터 먹었던 송정국밥집이 맞았다. 원래 자리에서 바로 옆으로 이전하곤 예전 맛이 안나서 한동안 찾지 않았는데, 이젠 맛이 자리를 잡았으려나 싶어 갔는데, 설 연휴에 문을 닫았다.


칼국수를 먹을까 하다가 고기가 땡겨 들어간 곳이 경주박가국밥. 50년 전통을 간판에 내걸었는데, 오래됐다고 맛을 보장하는 건 아니란 걸 다시 깨달았다. 한마디로 영 파이다(아니다의 부산식 표현). 다신 안 온다 해놓고 다시 먹고 후회하는 짓을 피하려고,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


1. 어떤 쌀을 쓰는 지 모르지만 밥이 너무 푸석푸석하고, 퍼다 만 것처럼 성의없이 담아준다. 어떤 메뉴의 식당이라도 밥이 우선이다.

2. 전부 퍽퍽한 살코기뿐이고 배추김치는 중국산, 반찬이 부실하다.

3. 국물을 큰 솥에 끓이면서 토렴을 하지 않고 뚝배기째 펄펄 끓여서 너무 뜨겁다. 너무 뜨거우면 맛이고 뭐고 구분할 수 없고 입 천정만 덴다.


바로 옆 테이블에 앉은 아버지와 아들은 수백을 시켰다. 명절이라 집에 내려온 아들과 아버지가 시내 나들이 나왔다가 점심을 먹는 듯하다. 나도 예전엔 밥, 국, 고기가 각각 나오는 수백(수육백반)을 즐겨 먹었는데 국밥값이 9천 원으로 오른 뒤로 따로국밥(부산에서 말아 나오는 국밥 먹은 기억이 없다)만 먹는다. 수백은 비싸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들이 엄청 쩝쩝대며 먹는다. 오히려 아버지가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먹는다. 쩝쩝~ 소리가 반복될 수록 거슬린다. 거기다 한 입 떠넣을때마다 여기 별로다 맞제, 맛없다 맞제, 우리 동네 국밥집이 낫다 맞제, 말 끝마다 추임새처럼 아버지의 동의를 구하듯 맞제맞제를 연발한다. 맞제맞제~ 소리가 반복될수록 거슬린다.


이 집이 별로인 건 맞지만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바로 앞에서 아버지가(아닌 누구라도) 먹고 있는데 맛없제 맞제를 해대면 아무리 맛있는 거라도 맛있겠냐! 상대에 대한 배려없는 자식. 쩝쩝대는 소리와 맞제 맞제가 결합해서 바로 옆에 앉은 혼밥족의 신경을 슬슬 긁는다.


바로 옆 테이블이라 소리가 다 들리니 무시할 수 없다. 젠장~ 무례함은 무시할 수 없을 때 찾아온다. 나의 무례함은 상대방을 무시해서 가능하다.


그나저나 부산 남자들은 말이 없다는 낭설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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