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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리버 리 Mar 02. 2024

여행, 우연을 만날 가능성

장유스파랜드

그가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아토피가 그리 심하진 않았는데 나이 들수록 심해진 듯하다. 어떨 때는 거북 등껍질처럼 피부가 딱딱해지고 부위가 커져서 어쩌나 걱정되었다. 내가 잘난 줄 알았던 못난 시절엔 자신도 모르게 긁는 그에게 자꾸 긁어 부스럼 만든다며, 애도 아닌데 안 긁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며 지적했다.


헤어졌다 5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가 있는 것만으로 얼마나 소중한 지를 새삼 깨달았고, 그가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해결책이랍시고 먼저 얘기하지 말자 싶었고,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긁고 있으면 별말 없이 내 손을 아토피 부위에 가만히 대거나 긁고 있는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럼 그는 긁기를 멈췄다.


겨울이라 건조해서인지 피부 아토피가 진정되지 않고, 무릎도 안 좋은 그와 온천을 가자 싶어 찾던 중 그리 멀지 않은 장유에 온천이 있다. 수질이 괜찮다는 후기들은 있지만 별 기대를 안 했다. 한국의 온천은 어딜 가나 자신들의 온천은 뭐가 뭐가 함유돼서 몸에 좋고 얼마나 더 깊은 곳에서 퍼올리는 지를 자랑하니까. 한국 온천은 편안하게 쉬면서 몸과 마음을 진정시키는, 조용하고 아늑한 휴양이 될 수 있는 장치(시설, 분위기)가 부족하다. 그나마 시설을 갖춘 대욕장은 놀이동산류의 번잡함이 대부분이고 개인실은 싸구려 모텔의 넓은 화장실에 욕조가 놓인 딱 그 분위기다. 온천 하면 그와 갔다 온 지 20년이 다된 일본 온천이 여전히 떠오르는 걸 보면 뭘 함유했고, 수질이 좋은 팩트만으로 기억과 감정이 지속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얼마 만에 온 온천인가? 물에 몇 번 들어갔다오니 피부가 번들번들, 매끈매끈하다. 여성들은 목욕탕과 백화점 쇼핑하기를 좋아한다는데, 그래서 백화점에서, 목욕탕에서 몇 시간을 보내도 지치지 않는다는데, 그는 젊었을 때부터 답답해하고 오래 있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다. 온천물에 한 시간 정도 있다 나오니 배가 고파서 식당을 찾았다.


오~ 현지인 추천하는 초밥 맛집, 갔는데 양꼬치집으로 공사 중이다. 같은 상호를 쓰는 걸 보니 장사가 안 돼서 품목을 바꾸는 것 같은데 초밥과 양꼬치는 달라도 너무 다른 품목인데, 바꾼다고 잘될까, 싶다. 현지인 추천이니 뭐니 하며 맛집으로 올라오는 글들, 신뢰할 수 없는 이유다. 하기사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커피맛이 너무 훌륭하다는 글을 아무렇지 않게 올리는 세상이니. 곧 초밥 먹을 거라고 긴장을 풀었던 위에서 배고픔을 급호소해서 근처에 칼국수집이 보이길래, 기대 없이 들어갔다.


해물칼국수(8,000원)에 부추전(10,000원) 시켰는데, 작은 종지에 간이 되어있는 보리밥을 먼저 준다. 해물칼국수는 국물이 깔끔하고, 오징어(는 조금 질겼음)가 들어간 부추전도 맛있었다. 둘 다 바싹한 식감을 좋아해서 두께가 조금만 얇았으면 더 좋았겠다.


원래 가려던 초밥집이 영업을 했어도 맛에 실망했을 수 있고, 이미 배는 부르니 해물칼국수집은 안 갔을 테고, 몰랐겠지. 그리곤 그 동네의 식당에 대한 기억은 별로였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낯선 곳에 대해 한두 번의 개인적 경험만으로 판단하고 결정해 버린다. 그리곤 다시 그곳을 찾지 않고 주변에 거기 별로라고 얘기한다. 그 말을 들은 사람도 그곳에 가보지 않고 그곳이 별로라는 얘기를 전한다. 그렇게 우리는 가보지도 않은 곳에 대한 편견으로 사실을 만든다. 내가 사는 곳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곳인데 말이지.


여행자일 때 대략적인 윤곽과 동선만 짜고 현지에서 일어날 괜찮은 우연을 기대하는 재미, 그 재미로 여행을 다녔다. 여행업자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의욕이 넘쳤다. 다른 패키지 여행상품은 감히 따라올 엄두도 못 내게 하겠다는 욕심이 화를 불렀다. 어느 식당 어떤 메뉴를 먹고, 어느 카페는 들르고, 어딜 보고 어디서 찍고 등 시간대별 세부 일정표로 강행군을 했다. 빡빡한 일정이라 3일 차는 점심식사 이후 자유시간이었는데, 다들 내 주변에 머물고 있기에 다시 한번 자! 유! 시! 간! 말했더니, 그럼 이제 뭐 하냐 묻더라. 아~ 아무리 밥벌이지만 명색이 여행업자인데 이건 여행이 아니다 싶었다. 세상사 대부분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덕분에 괜찮은 우연을 만나게 된다. 가능성, 그게 여행이다. 불확실하고 불안해서 우연이 일어날 기회를 애초에 차단하는 패키지 여행상품은 여행처럼 보이려고 비슷하게 흉내내는 판매상품일 뿐, 이다.


에휴~ 온천 얘기하다가 여행의 의미까지 나이들수록 집중도는 점점 떨어지고, 우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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