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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리버 리 Mar 09. 2024

허탕, 얻는 건 있다

다음 정류장은 부산현대미술관 안내방송에 후다닥 내렸다.


종종 미술관을 찾는 건 예술적 안목이 있어서가 아니라 예술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만든 세계가 신기하고 궁금해서다. 내가 상상도 못했던, 상상했어도 표현할 수 없었던 세계를 직관할 수 있고,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시설을 이용하는건 납세자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고,


또 하나는 세계적인 미술관이든 동네 시립미술관이든 최소 몇 십 분은 걸어야 한다. 걷는 게 몸에 좋은 건 누구나 안다. 일부러 시간 내서 걷기 운동도 하는데, 미술관은 몸과 마음이 동시에 좋아지니 안 갈 이유가 없다.


아~ 그런데 말이다. 오늘은 허탕의 날인가? 10시에 문을 연다. 50분이나 남았다.


예상과 다른 일정 덕분에 커피 마시며 기다려야지 싶어 예전에 그와 자전거 타고 들렀던 카페로 갔다. 걸어가는 동안 그가 환하게 웃던 얼굴이 떠올라 나도 빙긋이 웃는다. 그의 갑작스런 통보가 있기 불과 한 달여 전, 행복하고 즐거운 날이었다. 몸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아~ 여기도 10시 오픈, 을숙도는 10시 오픈섬인가?


바람은 차고 있을 만한 데가 없어 에잇~ 집에 가자 싶어 버스 정류장으로 가다가 장애인스포츠센터가 보이기에 들어갔다. 비장애인도 이용가능하냐니까 그렇단다. 주말에 선착순으로 수영장 자유이용이 가능하단다. 4,000원, 오~ 가끔씩 수영하러 와야겠다. 로비 의자에 앉아서 핸드폰 게임하다가 10시 가까이 돼서 미술관으로 이동하는데 을숙도문화회관 앞 잔디밭에 야외 조각공원이 있다. 그전부터 있었는데 있는 줄 몰랐다. 허탕 덕분에 알게 됐다. 세상사가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가 보다.


부산현대미술관은 로비 공사 중이라 쿵쾅거리는 소음이 계속 들린다. 24시간 문을 여는 것도 아니면서 더구나 실내 공사인데 꼭 관람시간에 해야 할 이유가 있나? 대한민국은 긴급한 공사든 아니든 공사가 우선권을 가지고, 당연시한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시설이면 업자 편리와 공무원 근무시간에 맞출게 아니라 시민의 편의성을 고려한 공공적인 운영을 흉내라도 내자. 제발~


눈에 띈 전시

1. 부산하면 바다, 바다 하면 물고기, 물고기를 조각한 걸 걸었나 싶어 냄새를 맡는데 비린내가 확~ 지금껏 본 전시물 중에 가장 부산스럽다.

2. 비행기 경로를 뭐 하려고 걸어뒀나 싶은데 한국서 출발하는 경로가 너무 적다. 설명문에 베트남에서 떠난 배의 궤적(월남 패망 이후로 추측)과 난민 캠프에서 출발한 비행경로를 천에 자수로 만든 베트남 대이주의 역사란다.


이번 전시 제목은 ‘이것은 부산이 아니다’, 미술관 앞에선 뭔가를 기념하기 위한 사진을 찍으려고 이주민 어른 여럿이 꼬마 아이를 치장하고 세팅 중이다. 중앙과 멀수록, 주변부일수록 원래, 본래라는 개념은 약하다. 서로 섞이고 어울리며 살아가야 하니까. 그런 점에서 부산은 이주민들이 모여서 만든 도시다.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포용과 환대, 이것이 부산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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