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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리버 리 Mar 13. 2024

아무르 Amour 사랑

“병원 언제 가요?”

“어제 (복지관 청소) 일 갔다 오면서 안과 갔다 왔어 “

”내가 오늘 같이 간다니까”

”(니 번거롭게)머할라꼬, 어제 영 눈이 뜨금거려서“

”그라마 몇 시에 갈까요?”

”일찍 온나. 초밥이나 이런 거 나가서 묵게 “

”야“


“병원에선 뭐래요?”

“일주일 뒤에 다시 시력검사하재. 한다고 달라질 끼 있나 마는”

“눈이 어떤데?”

“오른쪽은 희미하기만 한데, 왼쪽은 건물이 꾸불꾸불 굽어져 보여”

“엥? 마이 불편하잖아”

“황반변성이라고 2~3년 됐어. 어쩔 수 없대“

”완전 낫는 게 아이고?”

”응. 노화라… 요새는 안경 끼도 테레비 자막도 잘 안 보이고 글자가 두 개로 겹쳐 보이고 그래“

”엄마 책 보는 거 좋아하는데 우짜나?“

”불편해도 보긴 보지“


“어제 <아무르>란 프랑스 영화를 봤는데, 피아노 선생을 하던 우아한 아내에게 갑자기 닥친 병으로 겪는 노부부의 일상과 죽음을 다뤘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라”

“아무르?”

“프랑스어로 사랑, 실제 나이가 많은 두 배우가 주인공인데, 아내가 갑자기 오른쪽 신체 마비가 되고, 말도 제대로 못할 만큼 점점 상태가 악화돼. 남편은 짜증과 화를 내면서도 아내를 병시중 들고, 결국 남편이 아내를 베개로 질식사시켜”

“하이고~ 남 일처럼 안 들리네 “

”내 의지대로 못 움직이는 상황에서 나의 존엄을 유지할 방법이 있을까? 엄마가 저렇게 되면 나는 병시중을 할 수 있을까? 남편은 왜 그 선택을 했을까? 죽음을 선택할 권리, 여러 생각이 들더라”


”몇 년 전엔 늙은이들끼리 얘기하면 자식들 고생시키지 말고 요양병원 가야지 그랬는데, 돈도 마이 들고 하니까, 요새는 한이틀 아프다가 죽는기 낫다 그래. 안 아프고 자다가 그대로 죽는기 젤 낫지만“

”요양병원이 가격에 따라 시설이나 식사는 달라도 수용시설이란 한계가 있으니 괜찮은 데를 찾는 게 힘든가 봐”

“그래도 자기 의지로 못 움직이고, 치매면 드가야지 우짜겠노? 뉴스에 자기 부모나 배우자를 오랫동안 간병하다 죽였단 얘기 나오면 나는 충분히 이해가 되더라”

“…“

“참, 교통부 외숙모 델꼬 가서 연명의료 안 받는다고 등록했어”

“어, 나도 했는데… 엄마는 우째 알았어?“

“아무리 더 살고 싶은기 사람 마음이래도 내 정신도 아인데 더 살끼라고 연명치료받고 싶진 않았거든. 우째 알게 돼서 하려고 했는데 외숙모가 그런 얘기하기에 델꼬 갔지. 한 달 뒤에 카드도 오대”

“응, 난 사후 장기조직 기증도 등록했어”

“그래, 죽으마 끝인데… 누구한테라도 도움 되마 좋지, 잘했다”


아파트 근처 상가에서 초밥 먹고 집 근처 용호별빛공원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산책했다.

(약간 망설이시더니)“00은 잘 지내나?”

(오기 전, 팔팔공구 보고 왔으니)“네, 잘 있어요”

“니가 잘해라, 00이 말이라마 무조건 듣고”

“아이구~ 걱정 마요. 말 엄청 잘 들어요 “

“그래, 그럼 됐다. 재밌게 살아야지”


네, 삼십 년 전에도 재밌게 살라고 하신 거 기억해요. 그 말을 지키지 못해 미안해요.

#넷플릭스

#초밥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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