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아가딜에서 콘센트 수리하기
에사우이라까지 잘 사용했던 노트북 전원 콘센트 돼지코가 없어졌다. 예전에도 한번 빠진 적이 있는데, LG는 딱히 쓸모도 없는 분리형 돼지코를 왜 만들었을까 싶었다. 인터넷으로 LG전자 문의, 1차 답변; 고갱님, 저희는 해외배송 안 하니 지인에게 부탁하던가 한국 와서 하세요, 모로코 또는 인근 국가에서 구할 수 없는지 물었더니 2차 답변; 고갱님, 국내와 해외 제품 달라서 안되니 한국 와서 하세요, Life is Good, 어찌나 고객 감동스러운지. 짐작컨대 아가딜에서 하룻밤 잤던 공사 중인걸 속인 숙소에서 프랜차이즈 숙소로 옮기며 잃어버린 듯한데 다시 그 숙소를 가서 불친절했던 직원이랑 말 섞기 싫은 데다 이것도 여행의 일부니 직접 구해보자 싶었다.
한동안은 모로코에 계속 머물 거고 노트북은 사용해야 하니 돼지코 없는 전원 콘센트를 들고나갔다. 점심 먹은 식당 주인에게 돼지코 없는 콘센트 보여주며 손짓발짓을 더해 쁘라블럼인데 어디 가면 되냐니까, Hassan대로에 전자제품 가게들 많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갔던 중앙시장, 어느 상인에게 일렉트로닉 매장이 어디냐 물으니 위쪽 길로 더 가란다. 걷다 보니 하이마트처럼 각종 가전제품 파는 곳(삼성, LG제품도)이 있고, 거만한 태도를 보이는 매니저에게 전원 콘센트 보여주니까 자기들은 없단다. 어디 가면 되냐니까 딱 잘라 모른단다. 매장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친절해 보이는 직원에게 물으니 Souk El Had에 가보라고 친절히 설명해 준다. 여행지에서 누구에게 길을 묻거나 할 때 친절해 보이는 사람을 택하는데, 다 이유가 있다. 언제 어디서나 태도는 전부다.
숙소 근처에 있는 Souk El Had로 택시 타고 왔다. 옷, 식료품, 향료, 야채, 과일, 육류 등 없는 것 빼고 다 있을 큰 시장이다. 핸드폰과 노트북 그림 표시를 쫓아 여기저긴 다니다가 용산상가스런 가게 앞까지 왔다. 수염을 길게 기른 중동 해커스럽게 생긴 기술자에게 보여줬더니 노 프라블럼이라며 50딜함이란다. 30분 뒤에 오라고 해서 시장 안을 둘러보고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설마 뜯어내고 전선을 연결한 건 아니겠지 했는데, 그러고 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쩌겠는가? 전기테이프로 칭칭 감아주며 노 프라블럼이란다. ㅎㅎㅎ
모로코에 있을 때도, 한국 돌아와서도 사용하는데 노 프라블럼이었다. 업무미팅할 때 노트북 꺼내면 다들 전기테이프 칭칭 감긴 콘센트를 보며 "왜 그래요?" 묻고, 모로코 1급 기술자가 만들어준 거다, 모로코요? 6개월 정도 머물다 왔다며 모로코 여행기를 언급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적당히 부풀리거나 가보지 않고 자료조사만으로 파악한 현지 정보를 전달해도 그들의 머릿속엔 모로코에 6개월 살다 온 여행 전문가가 들어가 있는 듯했다. 검은 테이프 칭칭 감긴 콘센트가 여행업 관련 일을 하는 밥벌이에 도움을 줄 줄 몰랐다. 세상 일 어찌 풀릴지 모른다.
노트북 수명이 다돼서 다른 제품으로 바꾸기 전까지 검은 전기테이프가 칭칭 감긴 콘센트는 현재의 나와 몇 년 전의 모로코를 연결시키는 기억의 존재였다. 여행의 특별한 것은 그곳에만 있는 풍경, 문화, 사람의 낯설었던 기억일 텐데,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수리했던 전자제품도 여행의 기억으로 남는다. 어떤 수식어를 갖다붙여도 여행은 일상의 부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