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다거북을 만나고

대만 남부여행, 류추섬

by 딜리버 리

새벽 4시 20분, 눈을 뜨자마자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타이난역까지 캐리어 끌고 20여분 걸어야 하는데 택시 탈까? 아니지, 타이난의 새벽거리를 언제 걸어보겠어! 얇은 긴 팔을 입어도 될 만큼 바람이 선선해서 걷기도 좋다.


05:47 출발 가오슝행 열차 안에는 타이중 쪽에서 타고 온 이미 지친 사람들이 자고 있고, 곧 지칠 사람들이 탄다. 신쭤잉역 도착했는데 동류 페리터미널행 버스를 여기서 탔단 걸 어디서 본듯한데 확실친 않다. 어쩌지? 긴가민가 할 땐 기! 내렸다. 가오슝에서 동류 페리터미널 가는 법 검색하니 쭤잉역 2번 출구 앞에서 할인티켓 받고, 1층 버스 정류장 1번에서 9127D 타란다. 첫차가 8시, 아직 50여분 남았다. 세븐일레븐에서 대만식 샌드위치 2개와 뜨뜻한 커피로 아침식사.


8시 출발 버스 타려는데 쭤잉역 2층에서 할인티켓 받아오란다. 이지카드 있다니까 그래도 받아오란다. 쭤잉역과 동류 페리터미널 오가는 버스시간표가 적힌 명함 크기 인쇄물에 오늘 날짜 직인을 찍어주는데 버스 탑승전 관계자가 회수한다. 버스비 할인 프로모션인 듯한데 어차피 승차권이 있어야 탑승가능한데 이건 왜 할까 싶다. 1시간 걸려 페리터미널 도착, 건물 밖 전광판에 보이는 10시 출발 배편 구입, 하지 마라! 선박업체가 3군데 정도 있는데 건물 밖 전광판 출발시간 보고 시간대 맞는 배편을 구입하면 되고 같은 가격이다. 10시 취소하고 9시 35분으로 변경.


30분도 안 걸려 도착한 류추섬, 숙소에 짐만 맡기고 스쿠터 빌리러 갔더니 국제면허증 없어서 전기 자전거만 가능하단다. 이렇게 달리기 좋은 곳에서 아무리 당겨도 최고속도 25km라니 싶었는데 여기는 최대 30km 정도로 다니는 듯 과속하는 스쿠터를 보지 못했다. 딱히 정한 바 없이 섬을 한 바퀴 돌며 지형을 익히던 차에 베트남 식당이 눈에 띄어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는데, 지금껏 먹은 쌀국수 중에 가장 밋밋하다.


13:30 체크인하러 숙소에 왔더니 4인실 도미토리에 손님은 나 혼자다. 바다거북을 보려고 류추섬에 왔으니 숙소 스탭에게 스노클링, 프리다이빙에 대해 묻자 번역기로 대답하더니 누군가와 통화하고, 잠시 후 까무잡잡한 피부에 팔과 다리에 새긴 문신이 몸을 움직이면 슬쩍 드러나는, 바닷속에서 사는 느낌이 확 풍기는 여인이 왔다.

-스노클링 언제 하게?

-내일 하고 싶은데… 몇 시 가능해?

-10시부터

-오늘도 돼?

-당연! 2시 가능해

-혹시 프리다이빙도 가능해?

-그럼. 근데 자격증 있어?

-아니, 배우는 중이고 이퀄라이징이 안돼

-딥 다이빙은 안 되겠네

-바다거북 볼 수 있다기에…

-스노클링으로 충분해

-오키. 그럼 스노클링 할게

바다의 여인이 전화를 하고 스노클링 인솔자 기다리며,

-류추섬 출신이야?

-아니, 타이난

-여기 오기 전에 타이난 3일 머물다 왔어. 근데 류추는 어떻게?

-바다가 좋아서. 넌 한국 어디 출신이야?

-부산

-어~ 우리 언니네가 부산 여행 중인데, 감천문화마을이라며 사진 보냈던데...

-인연이네


스쿠터를 탄 동네 청년이 와서 여인과 몇 마디 나누더니 따라가란다. 5분 정도 달려 다이빙샵에 도착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이 만든 상품이 아니라 매일 바다에서 놀던 동네 청년들이 자신들의 놀잇감을 관광객에게 파는듯 한데 오히려 믿음이 간다. 예전에 네팔에서 패러글라이딩 할때도 이런 분위기였다. 독일계 가족 3명이 오늘 스노클링 일행이다. 아래위가 붙은 체험복에 신발, 수경을 주고, 구명조끼를 착용하자 가이드가 선두에서 달리면 각자 오토바이를 타고 따라간다. 가오슝, 타이난처럼 류추섬 역시 스쿠터 천국이다. 지난번 타이베이도 그렇고 가오슝, 타이난도 스쿠터족이 헬멧을 안 쓴 걸 본 적이 없는데, 류추섬에선 관광객들만 헬멧을 착용하고 현지인들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쓰지를 않는다.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동네 앞 바닷가에 도착했다. 설마 여기서 바다거북을 본다고? 살짝 실망감이 드는데 스킨스쿠버를 체험하는 사람들이 이미 있는 걸 보면 여기가 다이빙 포인트인가 보다. 바다거북은 절대 손대면 안 되고, 어길 시 상당한 벌금을 문다는 경고판이 바닷가에 있다. 스노클링 가이드가 대만어로 호흡법과 안전을 설명하는데 프리다이빙을 배운지라 몸짓과 짐작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독일 가족 중에 동양계 남성이 대만어가 가능해서 영어로 통역을 해줬다.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데 물 깊이가 무릎도 안 찼는데 바다거북이 지나다닌다. 어허~ 바다거북이 이렇게 얕은 물에 사는 건가? 이렇게 흔한 건가? 구명조끼 덕분에 물에 뜬 채로 물속을 보고 있으면 무중력 상태에서 둥둥 떠다니듯 바다거북이 천천히 바닷속을 날아다닌다. 우리를 위험하게 여기지 않는지 옆에 있거나 말거나 자신들의 속도로 산호와 바위에 난 식물을 뜯어먹는다. 바로 눈앞에서 유유히 떠다니는 바다거북의 모습이 그저 신비롭다. 덩치가 큰 녀석은 바닷속을 살아온 세월만큼 등판에 이끼 같은 게 끼고, 어린 녀석은 덩치도 작고 등판도 말갛다. 어떤 녀석을 따라다니다가 바로 옆에 다가온 바다거북을 보지 못해서 급하게 방향 전환하느라 몸틀기를 몇 번, 구명조끼 착용한 걸 깜빡하고 바다거북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따라가려고 프리다이빙의 덕 다이빙을 시도하다가 아차 싶은 게 몇 번, 다음에 또 오면 프리다이빙 또는 스킨스쿠버를 해봐야겠다. 일단, 내일은 스노클링으로 또 보러 와야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What the 베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