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여름의 잠수』


여름이다.

너무 더워 한낮에 에어컨을 켜지 않고는 집에 있을 수가 없다. 더운 열기가 실내에 가득 차 실내는 점점 한증막이 되어 간다. 31도. 32도. 작년만 해도 에어컨을 켜는 날이 열대야 며칠뿐이었는데 올해는 낮에도 거의 매일 켠다. 그 날 중 하루 이 책을 만났다.


빨간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파란 알이 박힌 긴 목걸이를 서로의 얼굴에 드리우고 반대로 누워 얼굴을 맞대고 있는 아이와 성인 여성. 머리카락 색도 비슷하고 눈동자 색도 같은 푸른색이다. 여름에 엄마와 수영하는 시원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 아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아빠가 있는 아이

그런 아빠를 만나러 가는 아이

자기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아빠

문 뒤에서 울고 있는 아빠를 마주하는 아이

앞부분을 읽는데 온통 아이가 보인다. 단발머리에 땡땡이 무늬 상의를 입고, 날개가 어디로 갔는지 아빠 등 뒤를 바라보는 아이. 때로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때로는 담담한 표정으로 아이는 아빠를, 창밖을 바라본다. 아이의 마음이 어떨까 가늠이 되지 않는다.



# 사비나

아빠를 만나러 간 곳에서 아이는 사비나를 만났다.

사비나는 가운 안에 수영복을 입고 있다.

수영할 곳이 없는데도 같이 수영을 하자고 한다.

어느새 둘은 함께 풀밭에서 수영을 하고

그대로 누워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도 보고

까무룩 잠들기도 한다.

절대 위험하지 않은 친구

단지 가끔 저 멀리 어딘가로 침잠했다 다시 돌아오는 친구

아빠가 살고 싶지 않던 그 해 여름 아이와 함께 했던 친구 사비나

# 엄마

엄마는 왜 항상 뭔가를 읽고만 있는지

엄마의 마음도 무너졌겠지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겠지

아이와 함께 남편을 만나러 가지만 그녀 역시 절망스러웠겠지

아이와 같은 마음이었겠지

내가 있는데

우리 딸이 있는데

어떻게 낫는 게 어떤 건지 잊어버릴 수가 있지?



다행히 아빠는 겨울을 지나 여름이 되면서 나아졌다. 하지만 ‘삶이 꽤 괜찮아졌지만 결코 정말로 행복해지진 못했다.’ 아이는 사는 내내 다른 감정의 세상을 오가는 아빠와 같이 지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책 속 그림


참으로 사랑스럽고 고마운 아이.

아이는 아빠의 슬픔을 고스란히 받아 들여 비관하거나 절망의 세계에 웅크리고만 있지는 않았던 거 같다. 아이는


‘때론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 어떻게 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슬프다. 가끔은 너무 슬퍼서 슬픔이 지나갈 때까지 병원에 있어야 한다. 위험한 일은 아니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어떤 슬픔, 어떤 다름이 있을 수 있음을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랐다. 내가 다 대견하고 고맙다. 이젠 어른이 된 아이의 이야기를 읽으며 자꾸 눈물이 났다.




어린이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아기 때 나는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나는 육아가 참 버거웠다. 나는 아이들과 진심으로 즐겁게 놀지 못했고 아이들이 어서 빨리 낮잠을 자기를, 어서 빨리 밤잠을 자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내 눈은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을 마주하지 않고 항상 저 먼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짜증 가득한 또는 시무룩한 엄마였고, 무기력하고 지쳐 있는 엄마였다.


자기가 있는데 왜 엄마는 행복하지 않을까, 자기를 바라보는 엄마 눈은 왜 기쁨으로 반짝이지 않을까, 아가들은 궁금하지 않았을까? 자기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버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온몸으로 느끼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아기 시절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도 미안하다. 그래서 또 나는 자기가 있는데 죽고 싶은 아빠의 마음을 묵묵히 받아내 저런 생각을 하는 어른으로 자란 아이에게 참 고마웠다.



아이들은 이 책을 어떻게 느낄까 궁금했다. 아이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가늠이 안 되었기 때문에, 이건 어른이 된 작가가 그 시절을 회상하는 것이기에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10살 딸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아이는 다 읽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얼핏 보면 굉장히 슬픈 이야기 같지만사실은 아름다운 이야기야”


그리고 물었다.


‘그런데 엄마, 사비나는 정말 바다에 갔을까?’

‘글쎄…….’



사진: 아침

* 『여름의 잠수』사라 스트리츠베리 글, 사라 룬드베리 그림, 위고

사라 스트리츠베리가 쓴 장편소설이 있다. 국내는 『사랑의 중력』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다. 400페이지가 넘는 내용을 작가가 직접 그림책을 위한 글로 축약하였다. 글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사라 룬드베리의 그림이다. 둘이 참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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