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초록빛 세상은 아름다웠다.
야생을 간직한 숲은 너무 울창해서 두려웠다.
그 속에서 인간은 정말 작았다.
저절로 발걸음이 조심스럽게 옮겨졌다.
수 백 의 생명들
숲의 주인인 그들은 자신들의 공간에 들어온 인간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 중 왕이 있었다.
무시무시한 소리로 포효하는.
인간들은 점차 숲으로 왔고
초록은 점점 줄어들었다.
점점, 점점.
동물들은 사라지고
왕도 사라졌다.
왕과 딱 한 번 마주친 적 있는 아이는 그 순간을 잊지 못했다.
할머니가 되어 손자들에게 왕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는 바로
숲이 어땠는지
왜 모두 사라졌는지
왕은 어디로 갔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2017년 부터 몇몇 엄마들과 함께 마을에서 어린이들에게 그림책 읽어주는 활동을 해왔다. ‘깔깔 마녀와 함께 하는 그림책 여행’ 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해 온 활동은 코로나로 멈춰야 했다. 2021년 어린이날을 맞아 깔깔 마녀가 되어 달라는 제안을 받고 오랜만에 아이들과 그림책으로 만났다. 어떤 연령대의 아이들이 올지 몰라 책을 여러 권 준비해 갔다. 탁자 위에 표지가 보이게 죽 세워 놓고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고르도록 했는데 아이들은 이 책을 두 번째로 선택했다. 앗! 4살, 6살인 아이들, 끝까지 잘 들을 수 있을까?
첫 번째 책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를 읽어줄 때 아이들은 그림을 서로 보려고 목을 길게 뺐다. 앉은 자리를 박차고 탁자 위로 올라오려 하거나 앞으로 나오기도 하며 치치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서로 재잘재잘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책은 두 장 넘어가니 자기들끼리 딴 이야기하느라 여념이 없다. 나는 잔잔하게 설명조로 이어지는 글 읽기를 멈추고 그림만 보여주며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제야 아이들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그림을 본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울창한 숲은 사라졌다. 집은 더 많아지고, 흰색 여백 또한 점점 늘어 페이지를 하얗게 채웠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들도 모두 사라졌다.
“어? 나무들 왜 다 어디 갔어?”
“동물들은?”
“집이 대게 많아졌네!”
“초록색이 없어지고 흰색만 있어”
“왜 그래?”
라며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나는 아이들이 '인간은 나쁘다'가 아니라
인간과 동물(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공존하며 따뜻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먼저 만나고 알았으면 좋겠다.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나쁜 현상들을 외면하자는 것 아니고,
아이들이 책에서 좋고 예쁜 세상만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이 건강한 세상을 먼저 만나고
자신에 대한 신뢰,
사람에 대한 신뢰,
세상에 대한 신뢰 그 단단한 디딤돌 위에서
그렇지 못한 면을 맞닥뜨리고 스스로 생각하고 알아갔으면 좋겠다.
책으로,
어른의 말로 미리 학습되고 교육받은 것이 얼마나 아이들 마음에 깊숙이 스며들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러게, 어디로 갔을까?” 라고만 이야기한다.
“왜 그런지 우리 좀 천천히 생각해보자. 알아보자.” 하고 그림책을 덮었다.
아이들아~
조금씩 커 가면서 세상을 천천히 둘러 보렴,
지금의 이상한 느낌을 붙잡고 곰곰히 생각해 보렴.
그러면 너희들이 사는 세상이 조금씩, 건강하고 아름답게 변해 갈 거란다.
* 『GREEN』스테판 키엘 글그림, 라임
*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 버지니아 리버튼 지음, 홍연미 옮김, 시공주니어
* 아이들은 그림으로 변화를 단번에 알아챘다. 이유를 명확히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잘못된 거 같아’ 라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글은, 그림으로 좀 더 폭넓고 다양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을 단정적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글은 이야기를 전하는 적절하고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때로는 불필요한 부연이기도 하다. 그림이 좋은 그림책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이들이 그림책을 보며 스스로 느끼도록, 생각할 수 있도록 여운을 두면 어땠을까?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으로 다가오니 말이다. 그래서 그림이 참 멋진 이 책 마지막에 부연 설명처럼 붙은 글이 너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