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빈집』 이상교 글, 한병호 그림, 시공주니어, 2014


높이 솟은 주상복합 건물 지하에 이마트가 들어섰다. 건물 뒤 이마트 주차장으로 가는 길 맞은편에는 미성년자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었다. 길게 굴다리처럼 늘어선 공창가였다. 그 옆에 작은 단층집 몇 개가 허물어져 있었다. 지붕도 없고 대문도 없다. 벽만 간신히 서 있는데 마치 수직으로 잘라진 도면을 보는 거 같았다. 여기는 방 그 옆은 화장실. 바닥에 부서진 액자가 굴고 구겨진 천 조각들이 펄럭댔다. 하얀 양변기만이 꼿꼿이 모양을 유지한 채 놓여 있었다.


바로 옆 공창가가 어떤 느낌을 더해 주었을까? 양변기가 있어서 그랬을까? 양변기의 흰색 도기가 유난히 번쩍여서 였을까?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나는 마치 내가 발가벗겨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집이었고 방이었을 그곳이 속을 다 드러내 보이고 있는 모습이 너무 생경했다. 눈길이 자꾸 갔지만 똑바로 쳐다볼 순 없었다. 샅샅이 살펴보기도 어려웠다. 다른 사람의 삶을 몰래 훔쳐보는 것 같았다. 누군가 잠을 청했을, 사랑을 나누기도 했을, 용변도 보고, 악다구니를 지르며 싸우기도 했을, 방이거나 마루거나 부엌이거나 또 모두 다였을 그 작은 집들은 자신의 내밀한 안을 속속들이 드러낸 채 그렇게 오래도록 서 있었다.


작은 중고 서점에 가서 일렬로 꽂혀 있는 그림책 제목을 죽 훑어보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 보면 꼭 한 번 읽어봐야지, 구입해야지 생각만 하고 잊고 있던 책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어디서 들어보지도 접하지도 않은 책이었는데 신기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상교 동화 『처음 받은 상장』 을 좋아하고 한병호 그림을 좋아해 보게 되었는지도.


사람들이 모두 떠난 빈집, 집은 운다. 미닫이문은 속으로 운다. 대문은 서운해서 그대로 열려 있다. 집은 원망도 한다. 왜 나만 두고 떠나 라며.


사람은 집에서 산다. 지붕이 있고, 벽이 있다. 여름이면 더위를 피하고 겨울이면 추위를 피한다. 비와 눈도 피한다. 계절과 날씨만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선과 소리를 피하기도 한다. 나 혼자, 우리 같이 쉴 수 있는 곳이 집이다. 내 몸 하나 뉘일 수 있는 곳, 넓건 좁건 호화롭건 소박하건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나는 정말 생각한다.). 집에서 쉼을 쉬며 아이들은 자라고 나도 살아간다.


집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과 함께 세월을 보내며 집도 집의 삶을 산다. 이사 가더라도 또 다른 사람들이 오면 집도 새 삶을 살아갈 테다. 그들의 취향에 맞게 고쳐지고, 또 다른 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새길 터이다. 그런데 이 집에는 다시 사람이 오지 않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 그건 집일까?

그 때 누군가 이야기한다. ‘우리 모두 함께 살러 가자’고. 홀로 남겨져 울고 있는 집과 살러 모두 함께 가자니, 다정한 말에 가슴이 살짝 울렁거린다. 그리고 '살러 가자'는 말에 산다는 건 무언가 생각이 머문다.

산다는 건 무언가.

산다는 건 무언가.

산다는 건 시간을 보낸다는 거겠지. 내가 선택해 살기를 시작하진 않았지만 나는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시간을 보내지. 때론 견디지. 열심히 '자라고' 나이에 맞는 일을 '해 나가며' 1년 365일, 1일 24시간 주어진 시간을 나름 의미 있고 유용하게 보내려 노력하지. 어쨌든 생이 다할 때까지 우리는 시간을 보내며 삶을 산다. 혼자 때론 같이.


빈집에 함께 살러간 이들은 고양이다. 강아지고 참새다. "들깨야, 영겅퀴야, 도깨비바늘아!" 같이 가자고 한다. 같이 가서 지붕이든, 댓돌이든, 마당이든 모두 함께 어울려 살자고 한다. 사람이 떠난 곳에 또 다른 생명이 집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집과 함께 산다. 집은 이제 울음을 멈추고 그들의 가르랑거림과 살랑거림을 즐기며 또 다른 이야기를 새기고 있겠다.


세월이 많이 흘러 지붕, 벽, 담 등 집의 형태가 닳고 부서지고 희미해져도, 눈에 보이는 생명들이 다 사라진대도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어떤 존재가 거기에 거할지 모른다. 잠시 머물고 쉬다 홀연히 사라질지 모른다. 바람과 햇살은 더 자주 머물다 갈 것이다. 그러니 비단 사람이 살지 않아도 집은 집이다. 무언가는 머물며 거할 테니 분명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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