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진달래 꽃이 피었습니다
늦가을,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근처에서 기다리던 여자친구에게 얼른 달려갔지요. 그러나 그녀는 미용한 제 머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스마트폰만 보고 있었습니다. 살짝 서운한 마음이 올라올 때쯤, 그녀가 외쳤습니다.
"오빠! 연락이 왔어!!!"
"아마 연락이 오지는 않을 거야. 내가 조건이 딱 들어맞진 않거든."
올리브영에서 물건들을 만지작거리며 그녀가 말했습니다. 말인즉슨, 제가 미용실에 있는 동안 '유엄빠' 인스타그램에서 유기견 임시보호 게시글을 보았고, 별안간 임시보호(이하, 임보)를 신청했다는 것이죠.
예전에도 한쪽 다리가 없는 진도믹스, '씩씩이'를 임보한 경험이 있어서 임보가 쉽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습니다. 게다가 명시된 3개월의 임보기간은 취업준비 중에 있는 여자친구가 언제든 취업하면 지키기 힘든 시간이었고요.
자신의 처지도, 강아지의 처지도 여러모로 안타까운 마음에 저지른 일이었지만, 또한 여러모로 조건이 맞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죠. 연락이 오지 않을 거라고 말하면서도 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그녀. 그러나 답변은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했고, 기쁨과 당혹감이 섞인 환호가 터졌습니다.
저는 강아지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키워본 적도 없고 키울 생각도 없었습니다. 덕분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죠. 엉겁결에 서브 보호자가 되게 생겼으니 생각을 정리해야만 했습니다. 두뇌회전 끝!
"어어... 어... 어... 그래."
"강아지 임보 한다고?? 나도 가도 돼??"
2024년 10월 13일 일요일. 그녀가 운전하는 차에는 같이 클라이밍을 즐겨하는 친한 동생, 최 모 씨가 함께 탔습니다. 유기견 보호소에 도착하니 야외에서 운동하는 유기견들이 반기며 짖어댔죠. 보호사님을 따라 실내 공간으로 들어가자 합방하지 못하는 강아지들 외에 몇 마리 작은 강아지들이 거실에서 우릴 반겼습니다.
바쁘신 보호사님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넥카라를 한 강아지, 몸에 오줌자국이 그대로 있는 강아지, 어딘가 몸이 불편해 보이는 강아지들 속에서 유독 건강하고 예쁜 아기 백구가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너는 저리 가!"라고 외치던 여자친구는 내심, 이 백구가 임보 할 강아지인 걸 눈치챈 듯했습니다. 어차피 임보 할 강아지라면 지금은 다른 아픈 강아지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손길을 주고 싶었고, 또 혹시 이 아이가 임보견이 아니라면 괜히 정 주고 마음 아플까 봐 억지로 밀어냈던 것이죠. 그리고 어딜 가든 이쁨을 받을 강아지였고요.(사실, 이뻐할 거 다 이뻐하고 밀어냈답니다)
아무리 밀어내도 씩씩한 아기 백구는 바로 저에게 오거나 최 모 씨에게 가거나 바쁘기만 했습니다. 주변을 한참 돌아보다가 보호사님이 오셔서 여쭤봤더니 역시나 이 아기 백구가 우리에게 올 아이였어요. 임보 절차를 위해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농장 밭지킴이였던 '두리'라는 백구가 다른 암컷 백구와 함께 10일 차이로 총 13마리를 출산했고, 유엄빠에서 어미견들과 함께 다 같이 구조한 것이었죠. 그중에 입양을 위해 사회화 교육 시기가 된 강아지들의 임보처를 찾는 글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아기 백구에게 홀딱 반한 저는 사실 설명을 들어도 까먹어서 후일에 여자친구를 통해 다시 들은 이야기랍니다. 아기 강아지들에게 원숭이 시절이라는 표현을 쓰는지도 처음 알았지만 보는 순간 이유는 자명했죠. 아기 강아지 얼굴에 원숭이 같은 이마 라인이 있다니! 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생명체랑 앞으로 3개월을 함께 있을 수 있다니!
"이름은 뭘로 지을까?"
돌아오는 차량 뒷좌석에서 아기 백구가 들어있는 켄넬을 붙잡고 있던 최 모 씨가 물었습니다. 유엄빠에선 임보자가 자유롭게 이름을 지어주길 권했고, 우리는 이름을 고민해야 했죠.
당시 최 모 씨는 모락산 크롱 바위 문제에 빠져 있어서 문제 이름 두 개를 제시했습니다. 강아지 얼굴과도 비슷한 '크롱'과 크롱 바위에서 고레벨의 문제인 '진달래'.
맞습니다. 클라이머들끼리 모여서 아주 신나게 클라이밍 문제로 아기 백구의 이름을 지었던 것이죠. 그래도 암컷이니 크롱보다는 진달래로 여론은 기울었고, 그렇게 우리의 늦가을엔 '진달래'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켄넬 안 강아지를 만지며, 흘리는 콧물을 닦아주며, 우리는 달래야~ 달래야~ 진달래! 하고 불러댔어요.
진달래라는 클라이밍 문제처럼 튼튼하고 강하게! 또한 진달래 꽃처럼 향기롭고 아름다운 견생을 살길 바라면서 우리 마음속에는
진달래 꽃이 피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