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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Oct 26. 2021

정말 슬픈 그림 같은 사랑

- 스마트소설 -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 둘 사이의 침묵을 깬 것은 주문을 받기 위해 온 브런치 카페 종업원이었다. 

카페특성에 어울리지 않게 우리는 종종 점심과 저녁 사이에, 더 정확히 말하면 늦은 오후 시간 저녁 식사와 디저트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이곳을 종종 이용하곤 하였다. 


이날은 우리 둘 다 퇴근하고 저녁 시간에 서로 만났지만,  약속이나 한 듯 왠지 식욕이 없었다. 

내 앞의 그녀가 먼저 생과일주스를 주문했다. 

익숙한 메뉴판에 유독 내 눈에 들어온 메뉴가 보였다. 

난 원래 신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날 따라 왠지 신 것이 눈에 들어왔다. 

유자차였다. 

종업원이 사라지고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묻는다.


“그거 오빠가 싫어하는 거잖아?”


“…….”


“아직도 화 난거야?”


“…….”


그랬다. 

나는 아직도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원인 제공자는 나였지만 그녀가 정말 그렇게 행동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대판 싸웠다. 

처음 만난 이후 가장 크게 싸웠다. 

내가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그녀도 그렇게까지 행동하지 않았을 거라 했지만 내가 볼 때 그것은 순전히 자기방어적 자기합리화일 뿐이었다. 


“그딴식으로 합리화 해서 어물쩍 넘어가지마!”


“그딴식이라니? 뭐가 그딴식이야!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말꼬리 붙잡지마! 너가 분명히 잘못한 거야. 넌 내가 아니었더라도 분명 그렇게 행동할 여자였어!”


“나도 정말 화가 나서 그땐 그런거였다고! 그렇다고 그런일로 헤어지자고 하는게 말이돼?”


나는 말을 계속 이어갈 수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실망한 것은 그 사건이 그녀의 인성 문제라고 보았기에 그래서 더욱 실망스러웠는지도 모른다. 그 일이 있고부터 그녀에게 문자로 헤어지자고 먼저 말을 했다. 

문자라는 게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말로 해서 껄끄러운 걸 글로 간단히 보낼 수 있다는 게 정말 편했다. 

그런데 우리의 관계를 그렇게 편하게 끝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별이 만남보다 더 어렵다. 


하루에도 몇 차례고 그녀는 나에게 문자와 전화를 하였지만 속된 말로 나는 그냥 씹어버렸다. 

그녀는 억울해하였다. 

그리고 그 오해를 직접 만나서 풀기를 원했다. 

그러나 내가 거부했다. 

사실 그녀가 두려웠다. 

어떠한 거짓 연기로 나의 마음을 돌리게 할지 그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자살을 암시하는 그녀의 마지막 문자에 결국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만 것이다. 


따뜻한 유자차 한 잔을 들이켰다. 

향긋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다가 신맛이 머리끝까지 퍼지는데 그녀가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요즘 세상에 걸맞지 않게 편지였다. 

그녀는 지금 당장 자기 앞에서 읽어달라고 했다. 

스포트라이트처럼 쏘아대는 노란색 전구의 불빛에 그녀의 편지를 가져갔다. 


문장 하나하나 읽어내러 갈 때마다 편지 안의 그녀는 고분고분하면서도 순종적인 여자가 되어있었다. 

머리를 꼿꼿이 들고는 한마디도 나에게 지지 않으려 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자기의 진심을 알아달라는 절절한 호소가 계속 이어졌다.


편지 끝에 지난 일 년간 만나면서 단 한 번도 그녀에게서 들어보지 못한 말이 쓰여 있었다. 


‘오빠, 사랑해.’ 


내 마음이 그 한마디에 무너졌다. 


편지지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 읽는 척을 했다. 

그러면서 눈동자를 올려 그녀를 슬쩍 보았다. 

음료수 잔을 내려다보는지 고개 숙인 그녀에게서 긴 속눈썹이 보였고, 가녀린 손으로 연신 차가운 잔을 매만지는 모습도 보였다. 


그때 카페에서 80년대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곡조차도 ‘슬픈 그림 같은 사랑이다.’ 


‘이별 없이 사랑할 수 없다고 바람 이토록 모질게도 불었나’에서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잠시 움찔했다. 


결국,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비만 안 왔어도 이곳에 오지 않았을 거다. 

괜스레 분위기 탓으로 돌렸지만, 잡은 손을 이제 떼기 힘들었다. 


카페를 나왔다. 

종일토록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지난 일 년간 비오던 날 단 한 번도 같이 우산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은 적도 없었다.

그녀가 모두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녀와의 스킨십은 언제나 차가웠다. 

오늘 카페에서 잡은 손이 그나마 가장 뜨겁게 잡은 손이었다. 


내가 우산을 폈는데 그녀는 우산을 펼 기세가 없다.

당연히 각자 우산을 쓸 줄 알았는데 그녀가 조용히 내 우산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자연스레 팔짱을 끼며 내 어깨에 기대었다. 

의외의 행동에 놀랐다. 

그리고 나를 더욱 놀라게 한 말이 그녀 입에서 나왔다. 


'이별 없이 사랑할 수 없다고 바람 이토록 모질게도 불었나'


“나, 오늘 집에 들어가기 싫어.” 


내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멀어지려 했던 그녀였는데, 내가 멀어지려 하니 이제 그녀가 다가오고 있다. 


혼란스럽다. 


이별 없이 사랑할 수 없다는 게 사실일까? 


집으로 가는 버스정류장까지 그녀를 바래다준다. 

그녀가 탄 버스가 내 곁을 스치며 지나간다. 


그리고 그녀가 창가에 앉아 흘리는 눈물 한 방울이 가을비에 흩날려 그렇게 내 뺨을 타고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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