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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ann Oct 30. 2021

엘리베이터 안에서

- 스마트 소설 -

엘리베이터 안에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다음 층에서 누군가 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면서 어색하고도 난감한 상황을 빨리 깨주길 간절히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그의 바람과 달리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도 아닌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는 아파트 주민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날은 그가 사는 공동주택의 정기 재활용 수거일이었다. 

추석 명절에 정기 수거일이 낀 바람에 일주일간 모아놓았던 재활용 쓰레기를 포함하여 두 주간 집안에 고이 모아놓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공동주택 재활용 수거장은 평상시보다 두 배 더 많은 쓰레기가 쌓이고 있었다.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일은 항상 그의 몫이었다. 

그의 아내와 딸 셋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재활용 수거장을 구경조차 못 해보았다. 

무거운 건 남자인 아빠가 전부 해야한다는 집안 여자들의 일방적인 논리였으나 그가 생각하기에 그냥 그녀들이 귀찮아할 따름이라 믿고 있었다. 


그리고 이날도 명절 이후 늘어난 그 많은 재활용 쓰레기를 혼자 낑낑거리고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치우고 있는데 그의 큰딸이 늦은 귀가를 했으면서도 집에 곧장 들어가지 않고 단지 내 놀이터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연신 전화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멀리서 딱 봐도 티가 났다. 

낼모레면 대학 졸업반인데 아직도 패션은 대학 신입생이다. 

그의 딸이 대학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긴 검은 머리를 금발로 염색한 일이었다. 

그 후로 여러 번 희한한 색을 하고 다녔다. 

일 이년 그러고 말겠지 했지만, 대학 내내 저러고 있다. 

심지어 눈알도 파란색 서클렌즈를 끼고 있어서 왜 날 서양 여자로 태어나게 하지 않았냐는 무언의 항의를 하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다시 집에 들어가 나머지 재활용 쓰레기를 가지고 나오는데도 그의 큰딸은 여전히 전화통화 중이었다. 


“아이고 저녁엔 날도 쌀쌀한데 뭔 치마를 저리도 짧게 입고 다니는지.” 


그가 혀를 끌끌 차면서도 꼰대 아빠 소릴 듣지 않겠다는 듯 그냥 속으로만 중얼거린다. 

그리고 재활용 수거장에서 모든 일을 끝내고 다시 돌아오는데 그녀가 없다. 

이제 집에 들어갔나 생각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다. 


그가 후다닥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고개 숙인 그녀가 닫히려는 문을 재빨리 열림 버튼을 눌러 열어주었다. 

그녀가 그 옛날 엘리베이터걸처럼 문 앞에 조심스레 서서 긴 머리를 걷지도 않은 채 연신 휴대전화를 한 손으로 꾹꾹 누르고 있었다. 


그가 가까이 보니 왠 갈치 수십 마리가 길게 늘어져 있는 것 같았다. 

머리 색깔이 백발도 아니고 은색도 아니고 좀 그랬다. 

'언제 또 바꿨지?' 라고 생각하는데 괘씸했다. 

귀가하면서 아빠를 보고도 인사는커녕 아는 체를 안 했던 것에 그는 화가 났다. 


아까 멀리 떨어진 채 밖에서 눈이 잠깐 마주친 거로 퉁치려고 그러나 하면서도 ‘욘석 봐라’ 싶었다. 

워낙 새침하고 무뚝뚝한 큰 딸이어서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가만있어야 했는데, 결국 그가 질책하듯 그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뭔 전화를 그리도 오래 했냐!” 


고개를 돌려 머리를 젖히고 아빠를 볼만도 한데 그녀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가 그녀의 위아래를 찬찬히 그러면서도 뚫어지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짧은 치마가 아닌 짧은 반바지였고 그녀의 하얀 허벅지가 왠지 굵다 싶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그녀의 몸을 훑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엘리베이터 층 버튼을 보니 그가 가야 할 층의 버튼이 눌러져 있지 않고 바로 아래층 번호가 눌러져 있는 것이었다. 

설마 하면서 뭔가 자신이 실수했다고 느꼈지만 주워 담을 수 없었다. 


그가 슬며시 자신의 층을 눌렀고 마침내 그녀가 말없이 후다닥 내리면서 급하게 자신의 집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그녀가 자신의 엄마나 아빠에게 큰소리로 외칠 것만 같았다. 


“우리 윗집에 이상한 변태 아저씨 살아!” 


그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우리 딸에게 관심 없을 리가 없어. 저리 똑같이 하고 다니는데 어떻게 구별하겠냐고. 

내 잘못이 아니야. 그래, 절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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